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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연 Apr 01. 2018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 된다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방인'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을 뜻하지만, 그저 다른 사람이 아닌, 의도치 않게 낯선 곳, 다른 환경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존재가 되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전학생, 편입생, 신입사원 등 우리가 겪는 인생의 타임라인 속에서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은 무수히 많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외로워하고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는 '이방인', 가끔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공감받지 못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틀린 것은 없다. 다만 나와 남이 '다를'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 1960년대 냉전 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멜로 영화다. 주인공인 엘라이자는 장애인 여성이며 청소노동자이고, 그녀의 룸메이트 자일스는 성 소수자다. 엘라이자의 절친한 동료인 젤다는 흑인 여성이며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괴생명체는 앞선 등장인물들의 마이너함을 합친 것만 같은, 총체적인 이방인이다. 또한, 소련의 스파이로 등장하는 호스프테들러 박사 역시 이방인으로서 마이너 한 위치에 서 있다.


델 토로 감독은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람이든 괜찮고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영화를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델 토로의 멕시코인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그가 그동안의 작품 속에서 보여준 마이너 한 감성의 집합체이다. 이 영화가 '트럼프 시대의 퀴어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종, 젠더, 계급 등 사회 전 범위에 걸친 혐오와 차별이 활개를 치는 지금,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영화이다.




이방인의 기분을 느껴보지 않는다면, 이방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개인적 기구」(1969) 를 시연 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손짓에 따라 도시의 우발적인 소음이 개인적 사운드로 변조된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는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활동할 당시 폴란드는 강력한 국가사회주의를 유지했기 때문에 작품 활동에 제약이 컸고, 그래서 그는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났다. 이후 일생동안 스스로 이방인의 위치에 선 그는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 미국, 멕시코,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난민, 외국인, 노숙자, 가정폭력, 희생자 등 상처받고 억압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공공 예술'을 했다.


「노숙자 수레」(1988)를 시연 중인 모습. 사진의 배경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건물이다.


보디츠코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노숙자 수레」(1988)는 쇼핑 카트를 개조해 그 안에서 잠을 자거나 세수를 하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제품으로서가 아니라 노숙자가 길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만들었다.


낯설고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보디츠코의 작업물은 이방인이 처한 상황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그가 작업한 기구와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서로 각자 다른 형태의 길을 걸어온 우리가 마주쳤을 때, 문제가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도, 새로운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갖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정답을 찾지는 못해도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참고자료

월간디자인 오상희 기자, <소외된 세계를 대변하는 공공 예술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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