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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연 Apr 14. 2018

나와 우리들 사이

사적인 공용 공간의 부재


마당과 골목길 사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에 등장한 80년대 주택

이 도시를 빽빽하게 채운 네모들은 우리로부터, 마당에서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시간과 골목길의 낮은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를 빼앗아버렸다. 마당과 골목길은 우리가 편안한 차림으로 타인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관계의 공간이였다. 또한 사적인 공간과 공용 공간을 연결하는 '사이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방에서 나와 가족들이 모여 앉은 마루를 지나, 마당을 거닐다, 대문을 열고 나서면 좁은 골목길에 서서 담소를 나누는 이웃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집 3평 인테리어' 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다시 지금의 도시를 보자. 우리에게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은 채,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있는가? 급격한 근대화와 높아지는 도시 인구밀도로 인해 꽃과 낙엽, 바람으로 계절이 다가옴을 알려주던 마당과 이야깃 거리가 끊이지 않던 골목길은 단칸의 베란다와 발코니, 직선형 복도로 대체되었다. 도시의 골목길은 어두운 밤, 발걸음 소리 눈치게임이 열리는 범죄 불안 장소 1위가 되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침대가 보이는좁은 대학가 원룸에서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는 사치의 공간이다. 개인의 공간과 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공간이 부재하고 이웃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요즘, 도시의 현대인들에게는 사적인 공용 공간의 회복이 절실하다.



골목길과 정자나무 사이
마을의 중심, 정자나무

시골의 마당과 골목길을 지나면 마을 한 가운데에는 정자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서구 문화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정자나무가 있었다. 옛날 정자나무는 어린이들의 공동 놀이터이자 어르신들의 사랑방, 마을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은 옥수수를 베어먹고 농사짓던 어른들은 잠시 땀을 식히며 시간을 보냈다. 광장 문화와 정자 나무의 차이점은 자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계절에 따른 나무의 변화와 함께 마을 공동체도 이어져 나갔다.



정자나무와 빨래방 사이
홍콩의  셀프세탁소 'Coffe & Laundry'

'빨래'는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분이며 지금의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가사일 중 하나이다. 한 장소에서 세탁과 건조를 마칠 수 있는 셀프 빨래방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대중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가 혹은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에서 흔히들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특히, 홍콩에서는 셀프 세탁소가 모닝 커피를 즐기는 카페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연장으로, 작가들의 전시장으로 쓰이는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하늘로 치솟는 집값때문에 소형 세탁기조차 놓을 공간도 없는 마이크로 아파트로 밀려난 시민들은 일주일에 3회 이상 셀프 세탁소를 이용한다. 퇴근 후 편한 차림으로 세탁소에 들려 빨래를 하면서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는 사랑방의 역할도 한다. 옛날 동네 아낙들이 모여 방망이질을 하던 빨래터처럼 '세탁'이라는 행위가 개인적인 것에서 다시금 사회적인 행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이 사회화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현대 사회의 산물인 세탁소가 바꾸고 있다.


우리의 환경은 빠르게 도시화 되었지만 우리의 정서와 본능은 아직 머물러있다.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 주차된 자동차로 가득한 아파트 마당이 아닌. 단순한 통로의 역할을 하는 복도와 종잇장같은 현관문이 아닌.







참고자료


<놀이터이며 사랑방이며 국회의사당이던 정자나무>, 김도수 기자

http://jeonlado.com/v3/detail.php?number=4078&thread=23r01r15


<우리에겐 아직 골목과 마당이 필요해>, 유현준 건축가

http://www.sfac.or.kr/munhwaplusseoul/html/view.asp?PubDate=201602&CateMasterCd=600&CateSubCd=845


<옛 빨래터처럼 ‘세탁’의 사회화! 그런데 그 이유가 슬프다>, 김지현 기자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8040417327728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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