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하기 좋은 곳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에 약간 실망한 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유흥가를 지나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평소 여행에서는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편이지만, 호텔 주변 맛집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맛집 지도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호텔 추천 이자카야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골든위크 대목이라 혼자 방문하는 외국인을 받아줄까 싶어 조심스레 문을 열며 물었다.
"히토리 데스, 이마 만세키 데스카?"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예약 없이는 방문하기 어려운 이자카야가 많아 이런 질문이 습관처럼 되었다. 직원은 외국인인 나를 보고도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히로시마는 서양 외국인은 종종 보이지만, 한국인은 드문 편이다. 아마 히로시마행 저가 항공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고, 대부분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같은 대도시를 선호해서일 것이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직원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건넸다. 이자카야에서는 늘 오늘의 추천 메뉴를 먹어보는 편이라, 사시미와 덴푸라를 주문했다.
오코노미야키로 이미 배가 부르긴 했지만, 이번에는 맛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가게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으로 가득했다. 골든위크지만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직장인들로 시끌벅적했다. 혼자 온 나는 4인석에 앉았고, 옆자리에서는 회식 분위기 속에 맥주가 오가고 있었다.
사시미는 신선했고, 덴푸라는 이번 히로시마 여행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튀김 속 치즈와 햄이 풍미를 더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입맛을 돋우는 기분이었다.
북적이는 분위기를 뒤로하고 맥주 한 잔을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메뉴판을 건네주었던 아저씨가 혼자 여행 왔냐며 말을 걸었다. 스몰토그를 잠시 나눈 후 그는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며 문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 따뜻한 배려 덕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다시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꼭 다시 찾고 싶은 이자카야였다.
https://maps.app.goo.gl/CtsmTnFmLLx5kvDJ7
이자카야를 나선 뒤, 첫날을 이렇게 끝내기엔 아쉬워 구글맵에서 다른 이자카야를 검색했다. 구글맵에서 찾은 바로 옆에 있는 사케바로 발길을 옮겼다. 배는 부르지만 술 한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배 부른데 왜 더 먹으려고 하냐"고 잔소리할 게 뻔했지만, 마음속으로 "딱 한잔만"이라고 대답하며 술집으로 들어갔다.
작고 아늑한 술집 안에는 사케 병이 빼곡했다. 안주는 간단히 오이 된장무침을 주문했고, 금세 나왔다. 이곳은 사케를 한 잔씩 맛볼 수 있는 사케바였는데, 모두 처음 보는 사케들이었다. 첫 잔은 와인 같은 예쁜 병에 담긴 사케를 골랐다. 두 번째는 히로시마 사케였는데, 바닷물을 닮은 파란 병이 인상적이었다.
바닷물처럼 짭조름하고 깊은 맛이 나는 사케였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한 병 사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여행 마지막 날까지 깜빡 잊고 결국 사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두 번째 잔을 마시던 중,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나에게 사장님 내외분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일본어는 할 줄 아세요?"
"조금이요."
사장님은 한국인 손님이 가끔 오긴 하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셨다.
"한국은 일본보다 물가가 싸죠?"
"코로나 이후 물가가 많이 올랐어요. 요즘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비싼 것 같아요."
작은 대화는 자연스레 물가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장님은 아마 일본의 버블 경제와 호황기를 경험하셨기에, 한국이 아직 일본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저렴하게 예약했지만, 호텔은 비싸게 잡아서 아쉬웠다고 하자, "비행기라도 싸게 잡아서 다행이네요"라며 웃으셨다.
히로시마는 외지인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관광객을 향한 사장님의 수줍고도 호기심 가득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히로시마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외지인에게 텃세가 있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려고 했던것 같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기억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https://maps.app.goo.gl/6G2qwLyAfjorZtCv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