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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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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3. 2019

기숙사의 무말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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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르고 여러 대학의 수시 논술을 보고 난 후, 전부 떨어졌을 때의 암담함을 그려보고 있을 때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확인한 홈페이지에는 내가 수시에 합격했다는 내용이 떠 있었다. 시험을 보고 나와서 가장 망쳤다고 생각하며 미련을 버리고 있던 대학이었기에,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뻤다.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도 '합격' 두 글자에는 변함이 없었고, 나는 곧바로 1월부터 시작되는 신입생 OT에 참석하게 되었다.


OT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 입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여전한 우정으로 돈독하게 지내고 있는 4명의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 삼아 기억 저장소라 불릴 정도로 첫 만남 때 그들의 모습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그때는 이렇게 친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다지 유심히 지켜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또한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대략 한 달 정도 진행된 신입생 OT는 오전과 오후 모두 빡빡한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처음에 우리는 열정에 가득 차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점차 줄어서 예비대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반토막이 나 있었다. 이제 막 대학에 붙은 해방감과 신입생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푼 20살들에게하루 종일 또 수업을 듣는다는 건 고3으로 돌아간 것처럼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시간에 서로의 우정을 쌓는 일들에 집중했다. 물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잠도 안 자고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극세사 잠옷 바지 차림으로 새벽 시간 고요한 바깥을 산책한답시고 걷고, 그것도 모자라 밤새 떠들다가 술도 안 먹은 애들이 24시간 하는 설렁탕 집으로 새벽 5시에 밥을 먹으러 갔다.


그런 일들로 한 달 동안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학교에 입학해서 완전한 신입생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우리는 계속해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서울이 집이었던 나는 더 이상 기숙사에 살지 않았고, 친구들은 대부분 집이 지방이었므로 기숙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신입생이 된 이후의 생활은,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한 달이라는 제한 시간이 주어져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퀘스트를 수행하듯 충동적으로 해버리던 예비 대학과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매일 각자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어야 했고,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주어지는 과제를 해대느라 바빴다. 그래서 입학 이후, 우리가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방 3개짜리 기숙사였다.


https://www.istockphoto.com/kr


우리는 자주 그곳에서 각자 컴퓨터로 과제를 하다가 수다를 떨었고, 그러다 보면 밥 먹을 시간이 찾아왔다. 나가서 사 먹을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귀찮아져 친구들이 가져온 집 반찬과 인스턴트 밥을 데워 같이 먹곤 했다. 그 기숙사의 찬장에는 스팸과, 각종 소금 김, 라면이 가득했고 웰빙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던 우리는 자주 그런 것들을 곁들여 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입맛을 현혹시키는 인스턴트보다도 가장 밥도둑이었던 것은 친구 중 한 명이 가져온, 할머니가 해주신 무말랭이 무침이었다.


https://m.yourstage.com/contents/contents_view.aspx?thread=109374


집에서도 엄마가 해준 무말랭이 무침은 가끔 먹어봤었지만, 자취방에서 친구와 함께 먹는 무말랭이 무침은 쉽게 먹을 수 없는 남의 집 반찬이라 그런지 색다른 맛이 있었다. 매일 아침 집밥을 먹고 나오던 나에게는 그저 가끔 맛보는 특식 같은 것이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그 무말랭이 무침에서 그리운 향수를 느끼는 것도 같았다. 다른 어떤 반찬보다도 무말랭이 무침은 빠르게 사라져 갔지만,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그것은 금세 또 냉장고에 가득 채워지곤 했다.


그리고 그 집밥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와의 관계를 새롭게 엮어갔다. 우리는 집밥을 함께 먹는 가족 아닌 가족이었고, 하루 중 진짜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구 아닌 식구였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가면서 우리 사이에도 뭔가 끈끈한 것이 더 생겼다.


어린 신입생이었던 우리가 점차 대학 생활을 해나가면서, 더 이상 신입생 시절의 몇 달 남짓한 집밥 시간은 갖지 못할 때가 많았다. 기숙사에서 독립을 한 친구도 있었고, 동아리 생활이 바빠지기도 하고, 연애를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끈끈함은 여타 다른 친구와 맺는 관계와도 달랐다. 함께 먹은 그날의 집밥들은 우리를 다른 곳에서 즐겁게 보내다가도, 서로에게 돌아와 비밀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끈이 되어 주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도, 나이게는 그들과의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애틋한 마음이 있고 그것이 각자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를 한데 모아주는 울타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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