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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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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3. 2019

학교 앞 철판볶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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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고 가장 달라진 점은 이제 나의 시간은 내가 꾸려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건 매우 자유로운 동시에 방치당하는 듯한 새로운 기분이었다. 내가 들을 강의 시간표도 내가 짜고, 더 이상 정해진 식당에서 정해진 점심 메뉴를 다 함께 먹지도 않았다. 나의 시간은 오로지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었다.


자유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속박당하고 싶은 오묘한 기분으로 나는 얼마간 당황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갑자기 들이닥친 기약 없는 자유로 인해 나는 갑자기 목적지를 향해 달려온 기차에서 내린 뒤 갈 곳이 없어진 사람의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달리는 기차를 타고 이제 겨우 내렸을 뿐인데, 이제부턴 니 몫이라며 어떤 방향도 없이 내팽개쳐진 것 같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스러운 것은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듣는 강의 시간에 맞추어 끼리끼리 모여 밥을 먹는 것도 어색했지만, 그때마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학교 근처 밥집을 찾아다녔다. 학교에는 정문과 쪽문이 있었고, 그곳들 주위로 식당이 분포하고 있었다. 쪽문의 식당은 건물이 다들 낡은 탓에 조금 좁고 복닥 복닥 하고 허름한 밥집이 많았지만, 그만큼 저렴한 가격대로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반면 정문 쪽은 좀 더 번듯한 거물이 많았기에 더 깔끔하고 밥집 이외에 파스타나 카레 같은 색다른 메뉴도 많았다.


그 두 문의 사이에 철문이라고 불리던 입구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철문만큼이나, 그 주위에 있는 식당들도 정문과 쪽문 사이 그 어디 즈음의 가격대와 맛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로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철판볶음이었다. 정확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식당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볶음 메뉴를 팔았다. 누군가는 이 집이 맛있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옆집이 맛있다고 했지만 두 식당은 늘 손님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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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해물철판볶음밥, 부대 철판볶음밥, 불낙 철판볶음밥과 돼지 두루치기가 있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몇백 원이라도 저렴한 볶음밥을 먹었다. 볶음밥이란 섞어 먹고 싶은 조합을 얘기하면 주방에서 뚝딱 섞여 나오는 밥을 철판 위에 올려두고 볶아서 떠먹기만 하면 되는, 간단하지만 푸짐한 메뉴였다. 더군다나 이 식당에서는 콘프레이크가 올라가는 마요네즈 양배추 샐러드가 무한 리필이고, 작은 병에 든 꼬마 사이다가 서비스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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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 넉넉함에 이끌려 그 곳을 찾았다. 한참 파스타며 새로운 음식을 찾아 다니다가도,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지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다시 그 철판볶음밥을 찾았다. 콘프레이크를 듬뿍 가져다 양배추와 함께 아삭하게 씹어가며 볶음밥을 기다렸다. 그 식당의 존재가 나의 고민을 얼마쯤 덜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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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식당을 주로 신입생 시절에 친구들과 공강 시간에 찾기도 하고, 남자 친구와 시험공부를 하다가 간단히 밥을 먹을 때도 찾았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없을 때도 습관처럼 가기도 했다. 허름하면서도 그 정겨운 분위기와 더불어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볶음밥은 언제나 실패가 없는 메뉴였으므로 더욱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러마 언제부터인지 그 식당은 점심시간 내 머릿속 순위에서 차츰 밀려났다.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할수록, 나는 점심시간에 학교 주변을 벗어나 더 멀리 가서 좋은 식당이 많은 지하철역 주변으로 갔다. 좀 더 비싼 돈을 주고도,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졌다.


신입생 시절의 딱 학교 주변만 했던 나의 경계는 슬며시 넓어지고 있었고, 그 식당도 어느 사이엔가 내 시야에서 벗어나버렸다. 그리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지, 두 식당 중 한 식당이 폐업을 하게 되었다. 자주 가던 식당이 망해서 없어지는 걸 본다는 건 꽤 씁쓸한 기분이었다. 이미 안 간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래도 신입생 시절의 추억이 가득해서인지 철골을 드러낸 옛정 가득한 식당을 보니 마음 한 구석에 쓸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세월은 착실하게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결국 풍화된다. 그것은 씁쓸한 헤어짐인 동시에 새로움에 대한 기약이다. 나의 신입생 시절도 어디론가 흘러갔고, 수많은 세월 속에 지금을 맞았지만 그 또한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수도 없이 생기고 없어지던 정든 나의 학교 앞 가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속으로 사라졌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학생들이 추억할 가게들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니 그저 덤덤하게, 나의 추억을 소중히 보듬어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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