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5번째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piphany Jan 12. 2019

나의 어린이 졸업식

7


태초에 스카이락이 있었다. TGIF도, 베니건스도, 빕스도, 아웃백도 있었지만 내가 처음 만난 패밀리 레스토랑은 바로 스카이락(Skylark)이었다. 지금은 떠나온 지 한참인 옛 동네의 번화가에는, 정확히 이렇게 생긴 레스토랑이 있었다.

 

https://1boon.kakao.com/share/onceuponatime


패밀리 레스토랑이 가장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건 역시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그 레스토랑을 몇 번이고 부모님과 찾았다.


꼬마 시절 처음 방문했던 스카이락은 나에게 눈이 휘둥그레지는 신세계였다. 레스토랑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2층만 있었고, 온 사방이 창이라 햇살이 한가득 들어와 그곳만 한층 더 밝혀주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가득했던 이 멋진 식당만큼은 왠지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닌, 어딘가 다른 시공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화려한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내가 그 레스토랑을 정말로 좋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https://theqoo.net/square/714253691


바로 이 조그만 깃발이 꽂힌 어린이 세트! 어린이 세트라고 부르던 이 것은 조그만 접시나, 급식 판처럼 생긴 어린이용 플레이트에 담겨 나오곤 했다. 메인인 햄버그 혹은 스파게티에 소시지, 치킨, 감자튀김 등이 곁들여 나오던, 그야말로 어린이 음식의 파라다이스 같은 존재였다. 집에서는 잘 맛볼 수 없었던 기름 향이 물씬 나는 각종 외국 음식들도 좋았지만, 음식에 꽂혀있던 조그마한 깃발이 나는 바보처럼 마음에 들었다.

.

https://theqoo.net/square/714253691


깃발에는 지금 보면 역시 어딘지 멍청한 느낌의 이런 종달새(인지 처음 알았다!)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 깃발에 뭐가 그려져 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꼬마는 엄마, 아빠 접시에는 자취를 감춘 깃발이 내 접시에만 꽂혀있는 게 못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쑤시개에 스티커로 붙여놓았을 뿐이지만 그 깃발이 꽂힌 어린이 세트가 나오면, 나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나 스스로가 특별해진 그 기분 때문인지 생일이며, 외식을 할 때마다 똑같은 정식을 먹어도 질리지도 않고 좋았다.


요즘은 잘하지 않는 시끌벅적한 생일 이벤트도, 나는 이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별안간 천둥 같은 굉음으로 온 식당에 요란한 생일 노래가 울려 퍼지고, 직원들은 짐짓 오늘 생일을 맞은 사람보다도 더 기쁘고 행복한 표정으로 그 사람의 테이블로 몰려간다. 그리고 생일인 사람에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고깔모자를 씌우고, 율동까지 곁들여 생일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는 것이었다.


이 건 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그 레스토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생일 당사자였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는 레스토랑 안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건 오히려 주변 사람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707849&memberNo=28403264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 나는 그 이벤트가 받고 싶기도, 안 받고 싶기도 한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만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행사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노래가 나오는 내내 몸 둘 바를 모를 나 자신이 벌써부터 짐작이 갔다. 생각만 해도 몸이 배배 꼬이는 것 같았다.


어느 해 생일인가에 나는 언제나처럼 또 스카이락을 방문했고, 결국은 그 이벤트를 받고 말았다. 그 경험은 예상했던 대로, 아니 생각보다 더 민망한 기분이 되는 낯 뜨거운 경험이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 그럴 리가 만무한데 나보다 더 흥에 넘쳐 축하를 해준다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생일마다 그 레스토랑을 방문했지만 그 한 번을 끝으로 다시는 생일 이벤트 같은 건 받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나는 여전히 기념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결국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도 스카이락을 찾았다. 그즈음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고, 더 이상 어린이 정식을 먹지도 않았다. 이제 중학교를 가니까 어린이가 아니라는 생각 같은 걸 무의식 중에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미 어린이 정식은 이것저것 잡다하기만 하지 먹을 게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졸업식 날의 스카이락은 여전히 햇빛을 머금어 밝고 알록달록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내 특별했던 날들과 깃발 꽂힌 어린이 세트의 추억이 가득한 식당과도 덤덤한 기분으로 작별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꽤나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 황당하게도 그 아파트의 상가 건물에는 이미 내 마음에서는 깔끔하게 졸업한 스카이락이, 엄청나게 큰 규모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가 전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종달새의 간판에도 나는 그래 여기에도 있구나, 하며 흘러 넘겼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번도 그곳을 방문하지 않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카이락은 국내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내 어린 날의 기억들 또한 그처럼 조용히 퇴장했고, 나는 어린이의 계절을 다시 한번 졸업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만두 회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