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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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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1. 2019

인연의 라면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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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그 친숙한 이름만큼이나 익숙하게 각자의 인생 속에 자리한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우리의 순간들을 특유의 노란 빛깔로 슬며시 데워준다. 물론 나의 인생 속에도 수많은 라면들이 제각각의 무게감으로 존재감을 빛낸다. 그중 가장 무겁게 내려앉는 라면은, 나의 어린 날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렷한 무게감은 분명, 죄 없는 라면이 아닌 그때를 기억하는 내 마음의 것이다.


아빠는 요리를 잘 못하시는 분이었다. (아무래도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 연세의 남자분들이라면 대부분 그러하듯이 스스로 도마를 꺼내 칼질을 한다던가, 양념을 만들어서 요리를 한다던가, 그런 것들은 별천지에 가까웠다. 아빠가 주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란, 요리를 마친 엄마를 위해 오늘은 내가 하겠다며 설거지를 해주는 정도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때문에 아빠가 만들 줄 아는 요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고, 그것마저 '요리'라고 감히 불러도 되는지 고민이 필요한 정도로 간단한 것들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라면이었다. 냄비에 물을 부어 끓어오를 때까지 한 템포 기다렸다가 면을 넣은 후, 스프와 건더기를 넣고 적당히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 라면은 엄마가 가끔 힘들다며 주방 휴업을 선언할 때, 아빠가 익숙한 동작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요리였다.


하지만 소소하고 가벼웠던 휴업이 주방 파업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기민하게 느낄 수 있었던 냉랭한 기운. 어린 내 앞에서 큰 소리를 내신 적은 없으셨던 분들이지만 부모님이 말을 섞지 않고 간단한 것조차 나를 통해 서로에게 전달하면, 나는 오늘이 그 날이라는 걸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자주 있는 날은 아니었어도 그런 날이면 엄마는 끼니때가 되어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늘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 주방은 차갑고 휑한 기운만 가득했다. 그 서늘한 기운이 온 집안에 흘러나와 적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그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당신의 손을 들어 올린 채, 멍한 눈빛으로 손 마디마디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곤 했다. 나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다급해져서, 대답도 필요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자꾸 되물어보기도 했다.


냉랭한 그 날에는 식사 때가 찾아오면, 아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홀연히 주방의 불을 탁 켜고 부스럭거리며 라면을 꺼냈다. 그리고 아빠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허둥지둥 이것저것 찾는 동안, 조용하던 집안에는 순식간에 소리가 흘러넘쳤다. 나는 그때서야 안도하는 기분이 된다. 이 상황이 해결될 수 있는 어떤 실마리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아빠는 한참을 등만 보인 채 보글보글 라면만 끓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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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라면이 다 익으면, 아빠는 냄비채로 식탁에 라면을 놓고 냉장고에서 김치까지 꺼내고 나서야 나를 찾았다. 엄마 라면 드시라고 해라. 그러면 나는 왠지 불안한 기분이 되어, 이미 아빠가 주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등을 돌려 누워있던 엄마에게로 가 그 등을 두드렸다. 엄마, 아빠가 라면 끓였어. 라면 먹자. 응?


내 귀에도 낯설게 들리는 높은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나는 이 상황을 얼른 벗어나고 싶어 진다. 엄마는 역시나 나는 안 먹을 테니 아빠랑 둘이 먹으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오로지 다 함께 밥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조른다. 어차피 라면의 맛이야 누가 해도 다를 것이 없는 스프의 맛이지만, 나는 아빠가 라면을 맛있게 끓였다며 어서 먹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내가 몇 번쯤 엄마를 흔들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면, 엄마는 마지못해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https://gymlive.net/illustrator_won.cheol.kim/photo/1920981305684698022_2971783941


식탁에 앉은 엄마는 눈도 들지 않고, 덩그러니 앞에 놓인 라면만 쳐다본다. 그녀가 마주하는 라면은 그 흔한 계란 하나 깨 넣을 줄 모르고, 파 하나 썰어 넣을 줄 모르는 아빠를 닮은 무덤덤한 그것이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평소와 달리 조용하기 짝이 없는 식탁이지만, 나는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편안함이 밀려온다. 그와 동시에 까맣게 잊고 있던 배고픔도 찾아와 어딘가 녹초가 된 기분으로, 세상 그보다 맛있을 수 없게 라면을 들이켰다.


약간은 버거운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 나는 또 쉽게 그 라면의 무게를 벗어던졌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이따금씩 찾아왔고 늘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먹었던 라면들은, 이를테면 부모님이 냉랭한 시간들 속에서도 결국 풀어나가야 하는 실타래 같았다. 월하노인이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반드시 맺어진다고 한다.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묶여있는 운명의 남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엮어온 인연의 끈도 자못 긴 세월이다.


그때 꼬불꼬불한 라면을 물끄러미 보던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영원히 그녀 자신만 알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새삼 그 시간들이 부부가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결혼이 그러하듯 어느 하나 사정없는 굴곡은 없겠지만, 라면 면발 넘기듯 구비구비 그것들을 지나 몇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세상의 모든 부부들. 각자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그들의 인연이, 결국은 모두 함께 둘러앉아 먹었던 그 날의 라면들처럼 늘 무탈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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