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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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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1. 2019

가족 만두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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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둘러앉아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일단은 모두가 둘러앉아 계속해서 만들어내도 충분히 다 먹을 수 있는 인원이 있어야 한다. 또 그다지 솜씨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한 작업이어야 하며,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TV를 보며 설렁설렁 만들어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음식은 대개 명절 음식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명절에는 어른들이 전을 부치는 한 구석에 주저앉아 부쳐지는 족족 전을 집어먹었고, 고사리 손이지만 음식 준비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주로 할머니 집이나 큰집에서나 있었고 집에서까지 할 일은 대체로 없었다. 우리 집 식구는 나를 포함해도 고작 세 명. 이 단출한 인원이 둘러앉아 만드는 많은 음식이 바로바로 소비될 리 없었다.


하지만, 만두는 달랐다. 만두는 정말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에 어떻게 먹어도 맛있었다. 빚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쪄 먹는 만두도 일품이지만 한동안 냉동실에 꽝꽝 얼려둔 만두를 다시 쪄먹어도 여전히 맛있고, 프라이팬에 굽거나 심지어 국, 찌개에도 넣어 먹을 수 있으니 실로 팔방미인 같은 존재감이었다.


그래서 가끔 엄마는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에 바지런한 손놀림으로 만두 빚을 준비를 했다. 만두피를 잔뜩 사 오고, 찜기를 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고, 깨끗하게 빨아 둔 면포를 준비했다. 그런 다음 꽤 큰 대야가 꽉 찰 정도로 만두소를 준비했다.


엄마가 준비하는 우리 집의 만두소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들어갈 수 없었다. 내 기억이 또렷한 순간부터 아빠는 이미 고기를 먹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고기 알레르기로 시작된 습관이었지만, 아빠는 점차 모든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나중에는 육수조차 먹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위해, 엄마는 늘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할 때마다 아빠를 위해 수고로운 작업을 거쳤다. 카레를 먹을 때는 아빠 몫을 덜어낸 후 그제야 소시지를 넣었고, 고기 요리를 할 때는 항상 아빠를 위한 다른 요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하지만 만두소만큼은 굳이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두부와 당면, 그리고 김치만 넣어 깔끔하고 담백하게 빚어냈다.


엄마가 만두소를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서는 아빠가 세 식구가 모두 둘러앉고도 남을 만큼 넓게 신문지를 깔았다. 그다음 다 빚은 만두를 놓을 쟁반과, 만두피, 물, 그리고 만두소가 담긴 대야까지 거실로 날라져 오면, 그때부터 정상 회담하듯 온 식구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정상회담과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작업이 바빠 대화는 사치였다는 점이다.


https://steemkr.com/kr/@ericahan/47gm4t


만두 빚기는 제각각 만두소의 양을 가늠해가며 만두피에 떠서 올리고, 손가락에 물을 묻혀 만두피에 바른 후,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그것을 조물조물 여미는 작업이었다. 적고 나니 매우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순서로 이 작업을 해도 결과물은 전부 달랐다.  


https://steemkr.com/kr/@ericahan/47gm4t


다 빚은 만두는 이런 식으로 열을 맞추어 쟁반에 하나씩 올려두었는데, 슬쩍 봐도 누가 빚은 만두인지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속이 미어질 정도로 만두소를 꽉 채워 넣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민 만두피의 끝이 투박할 수밖에 없었고, 모양 또한 그리 예쁘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매우 빠르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일관된 크기로 정확한 모양새의 만두를 정갈하게 빚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손이 느린 아이였다. 분명 나는 한눈도 팔지 않고 오로지 만두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빚어내는데, 가장 빚는 개수가 적은 사람은 늘 나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자랑거리는 있었다. 내가 빚는 만두는, 세 명의 것 중 가장 예뻤다. 만두소는 늘 적지도 많지도 않게 적당했고, 만두피의 끝도 꼭 맞아 레이스처럼 선이 곱고 모양도 소담했다. 나는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애정을 쏟아부었다. 각자 다른 성향과 성격처럼, 우리의 만두는 만든 사람을 닮아가며 계속해서 쟁반 위에 쌓였다.


셋이 함께 도란도란 빚어낸 만두로 쟁반이 거의 다 차면, 엄마는 그 날 끼니로 먹을 만두를 찌러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도 남는 만두는 냉동실에 얼려두기 위해 소분하여 포장하였다. 15분쯤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만두가 푹푹 쪄지는 걸 기다리다 보면, 집 안에는 맛있는 만두의 냄새가 조금씩 퍼져 나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QPDI36BL_2Q


각자의 개성이 넘쳐나는 만두 회담이니, 한소끔 쪄낸 결과물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찜기 뚜껑을 열고 확인해보면, 아빠의 만두는 자주 터져있곤 했다. 욕심내어 가득 넣은 만두소 때문인지 자주 소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빼꼼 튀어나와있었다. 하지만 모양은 별로여도 가득한 만두소로 인해 가장 맛있기도 했다. 그리고 만두를 빚는 날이면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던 엄마는, 항상 내가 빚은 만두를 칭찬했다. 내가 쪼르륵 늘어놓는 만두들을 보면서 어머, 쟤 만두 이쁘게 빚는 것 좀 봐. 나중에 크면 예쁜 자식 낳겠네, 같은 류의 말들을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늘어놓았다. 그 칭찬에 기분이 좋아 나는 만두 빚는 날이 더 좋았다.


우리는 이건 누가 빚었네, 이건 내 것이 아니네, 같은 시시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쪄낸 만두들을 열심히 먹었다. 갓 쪄낸 만두는 야들야들한 피에, 엄마표 담백한 만두소까지 완벽했고, 호호 불어가며 양념장에 찍어먹으면 딱 좋게 맛있었다. 몇 판이고 다시 쪄내가며 우리는 계속해서 만두 피로연을 즐겼다.


그리고는 회담에 참가한 모두가, 만족한 기분으로 배를 두드리며 홀가분하게 식탁에서 일어나는 거였다. 이 가족의 만두 회담은 그렇게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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