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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각 변동처럼 모든 것이 흔들리고 변하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제 교복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에 자못 설레는 기분으로, 엄마와 함께 교복 브랜드를 여기저기 기웃대며 수도 없이 교복을 걸쳐 보았다. 끝내는 지루한 하품을 쏟아내는 엄마 앞에서 나만 아는 미묘한 차이로 교복을 산 후, 입학식 날까지 매일같이 교복을 보며 나는 멋진 신세계를 꿈꿨다. 하지만 키가 클지 모른다는 부질없는 염려로 한참은 넉넉하게 사는 바람에 우스꽝스럽던 교복 재킷을 걸치고, 나는 멋지기보다 한없이 어색하게 입학식을 치렀다.
처음 들어간 중학교의 교실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천장도 어쩐지 더 높았고, 초등학교의 그 밝고 천진난만한 소품들과 여기저기 가득했던 선생님의 손길 같은 것은 없었다.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도, 늘 보던 친구들도 없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던 것도 같다. 뭔가 바뀔 거라는 건 알았지만, 내 생각보다 큰 변화의 폭에 나는 점점 더 당황하고 있었다.
볕이 잘 들지 않아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던 학교 건물 2층의 1학년 교실에서, 나는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마주했다. 하지만 변화란 늘 여느 때와 같이 익숙함에 금세 뒤 따라 잡히는 법이었고, 나의 시작 또한 같았다. 어느덧 나는 매일 당연한 듯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익숙하게 교문을 지나쳐 빨아도 빨아도 곧잘 더러워지는 실내화를 신고 교실로 들어섰다. 늘 함께 밥을 먹는 친구도 생겼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함께 하교까지 하며 이제는 이 편이 더 익숙한 생활에 길들여졌다.
그 하굣길, 나는 인생 첫 포장마차에 발을 들여놓았다. 교문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거기서부터 우리 집까지는 쭉 뻗은 길을 그저 똑바로 걷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일단 꺾은 지 몇 미터도 채 되지 않아 너무 작아 있으나 없으나 한 횡단보도를 건너야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길을 건넌 그곳, 몇 년째 건물이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공터의 울타리 바로 앞에 나의 첫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초록색 포장마차 안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커다란 판에 계속해서 떡볶이를 휘젓고 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다른 아주머니가 오징어며 김말이며, 고구마 같은 걸 잰 손놀림으로 튀겨내고 계셨다. 칼 같은 분업 시스템 덕에 포장마차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5분도 안돼서 주문한 떡볶이와 튀김을 받아 들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허공에 삐죽 튀어나와있는 투명 비닐을 홱 뜯어 거칠지만 리듬감 넘치는 동작으로 떡볶이를 담기 시작한다. 떡볶이는 모양새는 안 예뻐도 인심 넘치는 양으로 뜨뜻하게 담겨 검은 봉지에 한번 더 휙 넣어져 나왔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검은 봉지를 받아 들었다.
길을 걷다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애초에 주 고객은 우리 학교 학생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온 중학교는 반경 500미터 안에 다른 분식집이라곤 없었고, 주변에는 빼곡히 줄 서 있는 아파트들과 초등학교 1개, 황량한 공터뿐이었다. 자연히 떡볶이는 우리의 주식이 되었다. 포장해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우리는 거기 앉아 비빔 떡볶이를 먹었다.
아줌마, 떡볶이 1000원어치에 김말이랑 오징어 튀김 넣어주세요. 그리고 옆에 놓인 국자로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듬뿍 퍼 푸르댕댕한 접이식 테이블의 간이 의자에 앉아, 한 컵 든든히 마시며 기다리는 거였다. 그러면 어묵 국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큰소리로 떡볶이 주인을 찾고, 우리는 냉큼 떡볶이를 받아 들고 돌아온다.
투명 비닐 하나 턱 씌워진 하얀 그릇에는 빨간 양념에 잔뜩 버무려진 떡볶이와 튀김이 2천 원 남짓한 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듬뿍 담겨 있다. 떡볶이 하면 밀떡이던 그 시절에, 이 넘치는 인심은 우리를 더욱 떡볶이 앞으로 모이게 하는 이유였다. 하교 시간이면 비빔 떡볶이를 먹으러 온 우리 중학교 손님들로 공터 옆 울타리를 따라 간이 테이블이 점점 늘어났다. 테이블들 면면을 살펴보면 다들 떡볶이 1000원어치에 튀김 몇 조각만 추가했는데도 2-3명이서 배불리 먹으며 한참이나 수다를 떨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3000원어치를 시키면 그 날은 떡볶이로 파티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따뜻함이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학교 앞 떡볶이의 맛이란 말 그대로 마약 같아서, 방금 밥을 먹고 왔어도 얼마든지 거뜬하게 먹어치울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 달고 어딘지 구수하기까지 한 양념에는 두툼한 쌀떡이 아닌 똑똑 끊어지는 밀떡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각종 튀김마저도 거기에 버무려지면 또 색다르게 맛있었다.
우리는 하루 일과처럼 하교 후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를 주문해 먹었고, 그곳은 우리의 수다방이자 놀이터였다. 떡볶이를 먹고 있자면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하교하는 익숙한 얼굴들이 한 명씩 평소보다 더 반갑게 다가와, 이쑤시개 하나씩 보태어 떡이며 튀김들을 집어먹으며 대화에 끼어들곤 했다.
그렇게 그 포차에 앉아 울타리 너머 공터의 흙먼지와 제멋대로 자란 풀, 바로 옆 조그만 도로를 가끔 지나쳐가는 차들, 테이블에 점점이 떨어지는 떡볶이 국물들을 보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더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곳에서 주머니에 든 몇 천 원으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을 뿐이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가방조차 둘 곳이 없어 고스란히 그것을 등에 멘 채 즐기던 인생 첫 포장마차 안에서, 나는 그렇듯 안온한 따뜻함으로 배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