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소음 없는 집, 소음 없는 내 방에 있다. 너무 평온해서 죽어도 좋을 것 같다. 가만히 침대에 앉아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을 주욱 둘러봤다. 내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지금 이 상태의 방이 내 지인들이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내 마지막 흔적이 되겠구나. 한쪽이 불룩 파인 로션통, 헌 이어폰과 시계가 담긴 파우치, 책장에 삐죽빼죽 꽂혀있는 여러 색깔의 책들. 투명 비닐에 담겨 있는 주짓수 도복, 그 옆으로 널부러져 있는 검정색 가방 두개가 보인다. 하나는 숄더백, 하나는 백팩. 검정색을 좋아했구나, 라고 생각해줄까. 통기타를 지나 책상으로 오면 내 용기와 강단이 반드시 날 행복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매일같이 말하고 있는 너의 3월 편지, 그 편지를 맨앞에 두고 캐롤 엽서와 비엠아이 진단표, 주변에서 도착한 청첩장들을 겹겹이 안고 있는 나무 독서대가 보인다. 그 오른쪽으론 요새 읽는 책들이 두서없이 가로로 쌓여있고 그 앞엔 집에서만 끼는 검정 뿔테 안경, 『가만한 당신』에 부록으로 담겼던 신문이 놓여있다. 마우스가 놓여있는 걸 보니 신문을 마우스패드로 썼나봐, 하면 옆에서 아빠가 맞다고 말해줄까. 멀쩡한 마우스패드 놔두고 신문을 패드로 쓰냐며 뭐라한 적 있다고 말해줄까. 혹시 그런 사소한 핀잔도 후회할까 아빠는. 그러면 어쩌나. 책상을 지나면 드디어 푸른색 침대가 보이고 흰색 이불 푸른색 베개가 보인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내가 여기서 그렇게 잠을 못 이뤘을까 떠올려볼까. 그게 슬플 것 같다 내 친구들은. 하지만 내가 많이 노력했다는 것도 알아줄거야. 베개 옆엔 윤코랑 윤새가 있고 그들이 어두운 밤 누구보다 나와 가장 가까웠던 베스트 프렌드였다는 것도. 사인까지 정해두고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당장 내일의 죽음을 두고 시작한 이야기고, 요새 내 화두가 불면이고, 그러니까 어쩌면 침대에서 가장 많이 울고 싶지 않을까. 나를 사랑한 사람들은. 하루라도 함께 누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까지나 노력했고 너희들은 최고였어. 그러니 너무 수고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좋은 편지를 쓴 것 같다.
2016. 10. 16.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