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선택
"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리고 무릎을 꿇고 저한테 사과했어요. 제가 비서 얘기를 해서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라고요"
" 그렇게 화해를 한 건가요?"
" 화해가 어떤 걸까요? 전 그날 이후로 승민이와 다른 방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리 관계를 이어나가도 될지 확신이 서질 않아요."
" 그럼 그 공원에서 남자친구의 뺨이라도 갈겨 주지 그랬어요!"
"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 은지 씨는 그런 행동을 할 성향이 아니죠. 그게 은지 씨의 강점이기도 해요."
" 네? 강점이라고요? "
"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그 성실함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 은지 씨가 정말로 남자친구와 함께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군요. 다음 시간에는 그 얘기를 좀 더 해 봅시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분이 울적한 채로 집에 들어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근처에 사는 효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일찍 퇴근해서 집에 있었다. 우리가 즐겨 가는 그 카페는 봄을 맞아 노란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다육이들을 놓아두어 푸릇한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는 주로 앉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 부드러운 라떼 향기는 효은이와 잘 어울린다.
" 상담 잘 받고 왔어?"
" 응. 선생님이 얘기 잘 들어주시니 하나씩 말하면서 미처 몰랐던 내 맘도 알게 되고 승민이 행동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돼."
"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은지야 너 어떻게 할 생각이야?"
" 아직은 잘 모르겠어. 청첩장 나가고 회사에 다 얘기했는데 이대로 접으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내가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식도 안 올리고 파혼했다. 이렇게 소문날 것 같고."
" 회사 사람들은 회사 떠나면 다시 만나기 어렵잖아. 잘 생각해 봐."
" 그렇긴 하지. 아빠 퇴직하기 전에 결혼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는데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하다 보니 아빠 체면 살리려고 결혼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부모님이니까 내 마음 잘 알아주실 텐데. 무엇보다 딸의 행복을 바라실 테니까 말이야."
" 이제 우리 은지가 좀 어른이 되는 것 같네. 다른 사람만 생각하지 말고 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로 가야지. 나 니 편인 거 알지?"
"그럼. 이번 주말에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야겠어."
" 은지가 생각하는 동안 난 영화 봐야겠다. 참, 너 <헤어질 결심> 봤어? 사랑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고 추천 많이 하더라."
<헤어질 결심>을 다 보고 은지는 여주인공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서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어 승민이라는 이름대신 그놈이라고 저장했다. 그러고 나서 서랍에 넣어둔 청첩장을 하나 꺼내어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삶에 대한 의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1막이 끝나야 2막이 시작되는 법이지. 은지는 거울에 비친 유난히 반짝이는 눈빛이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