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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경 Jan 21. 2022

생태책방지기가 된 마을소설가,
김탁환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전남 곡성 미실란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다
전라남도 곡성군 섬진강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지점,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에 새롭게 책방이 열렸다. 

이른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23년간 도시에서 집필하던 김탁환 작가가 곡성으로 내려와 이동현 미실란 대표와 여러 가지의 활동의 경험과 함께 만들어 낸, 특별한 공간이다. 생태를 핵심 주제로 하여 생태와 이어진 정치, 과학, 역사, 문학 등에 걸쳐 약 500여 종의 서적을 만날 수 있다. 

생태를 주제로 한 서적을 중심으로 총 500여 종을 만날 수 있는 생태 책방 '들녘의 마음' 전경.
김탁환 작가의 큐레이션으로 완성된 책방. 책마다 김 작가의 추천사가 달려있다.

 “(서울에서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기면서) 처음부터 생태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책으로부터 좀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미실란에 머물면서 보니, 사람들이 점심만 먹고 흩어지잖아요. 좋은 공간인데, 좀 더 다양하게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성군에 큐레이션curation이 되어있는 책방이 없더라고요. 이동현 대표에게 책방을 열되, 주제를 생태로 모아보자 했죠.”


  김 작가는 특히 10년간 읽은 책 중 생태 관련 300여 종의 서적을 엄선하고, 추천의 글을 일일이 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식이나 분류법이나 속력에 의존하지 않고, 섬진강 들녘에서 대대로 살아온 농부와 동식물의 몸짓에 어울리는 책을 모았다”고 책방을 여는 글에 적었다.

미실란 1층에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이, 2층에는 김 작가의 집필실 ‘달문의 마음’이 함께 있다.


  ‘들녘의 마음’이 열리면서, 곡성군 맛집으로 유명한 채식식당 ‘밥카페 반飯하다’를 찾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즐길 코스 하나가 더 생겼다. 밥을 먹고, 들녘을 바라보며 쉬다가, 책방에 들러 책을 읽고 고르고 사 간다. 지역 학교에서 단체로 찾아온 어린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책방으로 들어와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둘씩 가슴에 안는다.

  “움직임이 눈에 보여요. 책을 통해 독자를 만나는 것뿐 아니라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고, 또 그 안에서 책을 나누고….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지역으로 많이 오게 하려면 플랫폼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죠.”

책방은 시작, 학교로 이어진다
김탁환 작가는 이동현 대표와 농업과 생태, 예술이 만나는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곡성희망교육연대의 멘토로 강연과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 모내기 같은 농촌체험 등을 해왔고, 2021년에는 곡성 주민, 교사 가족을 대상으로 생태농업, 생태 글쓰기와 생태 판소리를 하루에 경험하는 행사를 4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생태책방은 김탁환 작가와 이동현 대표가 그동안 펼쳐온 일들의 결과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2022년에는 더 나아가 ‘학교’로 이어갈 계획이다.

생태책방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활동이 확장되고 있다.


  “커리큘럼을 새로 만든다기보다 미실란이 하는 모든 것을 생태학교에 담을 예정입니다. 쌀 학교, 초등학생 모내기, 추수 체험, 생태교육 원데이클래스 등 지역이 함께 배우고 가르치고 성장하는 각종 ‘학교’가 이곳에서 열릴 겁니다.”


김탁환 작가와 이동현 대표. 도시소설가와 박사농부의 만남으로 지역도 활기를 찾았다. 


  김 작가는 이 대표와 ‘걷기학교’도 기획하고 있다.
  “곡성에서 하동을 거쳐 광양까지 섬진강 주변을 걷는 거죠. 현재 답사 중이에요. 곡성에서 구례까지 걷고 그다음은 하동, 광양까지 걸어보고 나서 1박 2일, 2박 3일 코스를 만들 예정입니다.”
  걷다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보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미실란에 책 사러 갈게요”라는 그들의 인사가 반갑다.


‘달문의 마음’으로 바라보다
김탁환 작가를 실제로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미실란에서였다. 파란 하늘 아래 단층 학교 건물의 옥상에서 사색하듯 유유히 거닐고 있는 그를 보고, 반가움이 앞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가 선한 웃음으로 답하던 옥상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는데, 옥상에 오르자 한껏 무르익어가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중에 생태책방 이름이 ‘들녘의 마음’이라는 말을 듣고, 와, 하며 감탄했던 그 들판을 떠올렸다.

미실란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가을 들녘. ‘들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의 집필실 입구에는 ‘달문의 마음’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달문達文은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이름이다. 김 작가는 ‘달문의 마음’에서 일주일 중 나흘 이상, 오전 내내 글을 쓰고, 오후에는 들에 나가 농사짓는 것을 돕거나 화단에 식물을 심고, 때가 되면 배추를 수확해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이야기 학교’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틈날 때마다 지역 구석구석을 이 대표와 함께 걷는다.
  “도시에서는 생각할 게 너무 많아요.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일도 많고요. 그런데 곡성에 내려오면 잡스러운 것들이 사라져요. 누구와 만날 약속을 할 필요 없이 자연과 대화를 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김 작가의 집필량은 도시에서보다 줄지 않았다.


지역소멸에서 지역발견으로
본격적인 마을소설가로 산 지 1년여.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출간 이후 이동현 대표와 50회 이상 북 토크를 하며 전국 곳곳을 돌아본 김탁환 작가는 ‘지역소멸’을 어떻게 느낄까.
  “지역소멸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정작 소멸한 곳은 서울 같은 대도시입니다. 도시에는 인간만 남았어요. 우리가 어릴 때 흔히 보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던 세상이 사라진 거죠. 곡성에 오니 그게 다르더군요.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들으니 다시 세상이 돌아온 느낌이 들어요.”

생태책방 들녘의마음 입구에서 김탁환 작가

  

도시소설가에서 마을소설가가 된 후 앞으로의 집필과 활동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속한 곳의 글을 쓰게 됩니다. 매일 섬진강에 관련한 에세이를 써서 SNS에 올리고 있어요. 앞으로 단절된 농촌과 도시의 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공간이 있으니 계속 뭔가를 만들고 모이게 하고 하겠죠.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우리는 할 수 있으니까, 판을 벌이면 되거든요.”
  김탁환 작가의 말에서 세상을 통찰하여 이끌고 사람을 키워내는 능력이 탁월한 ‘달문’을 떠올렸다. 혼탁한 세상에서 지역과 농업, 농촌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현하고 확장하는 일, 그것을 위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뭔가를 함께 만드는 일. ‘달문의 마음’과 ‘들녘의 마음’에 거는 기대다.


생태책방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지역발견의 시작점이다.

사진 제공·미실란



TAGS: 대산농촌 2022신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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