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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경 Jan 31. 2018

농부가 되고 싶어요!

-호주 멜버른 콜링우드 어린이농장

농장에 들어서자 다양한 동물들이 반긴다. 아니 그건 내(사람) 생각이고 다들 무관심한 듯 각자의 삶에 몰두하고 있었다. 닭은 사람들 주변에서 먹을 것이 있나 이리저리 서성였고, 오래된 울타리 안의 송아지는 우유 먹을 때를 기다렸다. 양들은 비를 피해 나무 밑에 앉아 졸고, 토끼는 아이들이 주는 풀을 맛있게 먹는다. 동물과 사람, 나무와 꽃, 그곳에 있는 모든 생명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콜링우드 어린이 농장Collingwood Children’s Farm(이하 콜링우드 농장)의 풍경이다. 콜링우드 농장은 호주 멜버른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아보츠포드 지역에 1836년 문을 열고 182년째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콜링우드 어린이농장 매니저 알렉스 워커 씨

콜링우드 어린이 농장의 매니저, 알렉스 워커 씨.

  “1979년부터 지금의 모습(체험 농장)을 갖추었죠. 우리 농장의 비전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어린이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또한 이를 위해 농장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곳에서 13년째 농장 매니저로 일하는 알렉스 워커 씨(69)의 말이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콜링우드 어린이 농장 입구. 4인 가족 입장료가 20달러다.


3세에서 초등학생을 주 대상으로 농업을 배우고 체험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뱀 나타나다,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농장 안 과수원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의 안내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끔 뱀이 나와요. 대부분 위험하지는 않지만 조심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써놓죠.”
알렉스는 웃으며 말했다. 과수원에는 얼핏 정돈되지 않은 듯 다양한 나무와 꽃이 가득하다. 나무, 풀의 특성에 따라 “매일 물을 줘야 함”이라는 팻말도 보인다. 과수원을 가꾸는 ‘농부’들은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자연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날그날 평범한 듯 특별한 경험을 한다. 꽃망울이 터지고 열매가 맺히고 풀이 자라고 온갖 곤충들을 만나는. 그리고 이렇게 “뱀 나타나다!”라는 안내판을 쓰는 날이 오기도 한다.
  콜링우드 농장은 4.2ha, 약 12,000평 규모다. 빅토리아 주 땅이지만 정부 보조 없이 수익 사업으로 농장을 경영한다. 주로 3세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데, 입장료는 어른 10호주달러(이하 달러), 어린이는 5달러이다. 어린이 둘을 포함한 4인 가족은 20달러인데, 100달러(약 8만 5천 원)를 내고 자유롭게 입장하는 연회원도 있다.

농장 과수원.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곤충과 동물이 함께 산다.
과수원 앞에 붙어있던 안내 표지판. 뱀이 나타난 날짜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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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파머스 마켓을 열어요. 넓은 잔디밭을 야외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고 도시민에게 텃밭을 분양하죠. 카페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어요. 2016년에는 총 175만 달러를 벌어 이 중 150만 달러를 비용으로 지출했죠. (비영리법인이라) 이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어서 이 정도면 경영이 매우 양호한 겁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빅토리아주 농민들이 생산하고 가공한 농산물과 가공품만을 판매하는데 2천 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이러한 파머스 마켓은 날짜를 달리하여 다양한 장소에서 열리는데, 퀸 빅토리아 마켓 상설 유기농 매장의 새로운 경쟁상대로 떠오를 만큼 건강한 먹거리를 생각하는 소비자층에 인기가 높다.

교육 프로그램 이외에도 넓은 잔디밭에서 여는 파머스 마켓, 야외 결혼식 등 다양한 수익사업으로 농장을 운영한다


  농장 한쪽에서 덩치가 큰 학생들을 만났다. 농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학생들이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우리와 함께 포즈를 취해 준다. 농장의 작은나무계단도 이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놀이나 체험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키우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18개나 있다.

콜링우드 농장은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18개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농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학생들이 만든 나무 계단. 성취를 이끌어 내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자신감을 키운다.



농부가 되지 않아도, 영 파머Young Farmer가 된다


콜링우드 농장의 또 하나 특별한 프로그램은 영파머 클럽, ‘농부’가 되는 실습이다.
  “8세부터 16세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인터뷰를 거쳐 영 파머를 선발하고 주말마다 농부가 되는 데 필요한 실습을 합니다. 체험이 아니라 실제 농민과 똑같이 농작업을 하는 거예요.”
  영 파머 클럽에는 40여 명이 있으며 다양한 나이, 학년의 학생들이 함께 일한다. 이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비용은 연간 13만 5천 달러. 이 중 50%인 7만 5천 달러를 시에서, 나머지는 농장에서 지원하고 참가자는 100달러를 낸다.

음식과 자원의 순환을 알려주는 퇴비장. 인근 식당등에서 버려지는 식자재도 이곳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콜링우드 농장의 커뮤니티 가든. 도시민이 분양을 받아 텃밭 농사를 짓는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라고 알렉스는 강조한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고된 노동’을 매주 종일, 짧게는 3개월에서 2년 이상 농장에 와서 한다. 그들은 농민이 되기 위해 영 파머가 되는 것일까.
  “영 파머 클럽 멤버 중 99%는 농민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힘든 농작업을 하고 땀을 흘리며 농민의 고충을 알고, 내가 먹는 음식은 어디에 서 오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느끼는 겁니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립심과 주체성을 키우는 기능도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민의 힘이 농장을 지켰다


멜버른시 중심과 가까운 금싸라기 땅에 농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묻자, 알렉스가 답했다.
  “정부의 땅이니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다른 용도로 바뀔 수 있었죠. 실제로 압력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의 아보츠포드 수녀원Abbotsford Convent도 아주 유서 깊은 곳이거든요. 이 지역이 호주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개발 압력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어요. 8년이 걸렸죠.”
콜링우드 어린이 농장은 호주의 가장 오래된 농장이자,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만날 수 있는 자연이며, 농업현장이고, 이제는 호주의 문화유산이다. 알렉스는 “시민의 힘으로 농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들의 생각이 모이고 이것이 정부의 의지와 정책이 되어 다시 시민에게 돌아왔다. 농민이 아니어도 농업의 가치를 느끼고 공감하며, 농민과 소비자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젊은 농부’가 함께 자라난 덕분이 아닐까.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농장의 넓은 잔디밭. 이곳에서 파머스 마켓, 야외 결혼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TAGS: 대산농촌문화 2018 신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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