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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Feb 26. 2022

사천, 겨울의 끝에서

잔잔한 파도처럼, 나도

오랜만에 시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10월에 가족들과 남해 여행을 가는 길에 만났던 사천케이블카를 보고 언젠가는 한 번 와봐야겠다 다짐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어요.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나름 알차게 일정을 짠 덕분에 예쁜 곳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남일대 해수욕장


처음으로 찾은 곳은 남일대 해수욕장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바닷가예요. 부산의 넓고 큰 바다를 보다가 조그마한 바다에 오랜만에 와보니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오래되어 보이는 관광호텔들과 천막으로 지어진 해산물 음식점들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코로나 시국인 데다가 평일에 방문한 터라 더더욱 한산했습니다. 북적이는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는 느긋하게 둘러보기 좋은 곳이었달까요.

남일대에서는 코끼리 옆모습처럼 생긴 코끼리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코끼리바위까지 갈 수도 있지만 다음 일정들이 있어서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요. 백사장 양 옆으로 바위로 이루어진 해변이 있습니다. 작지만 갖출 건 다 갖춘 느낌의 바다였습니다. 잔잔한 파도에 비치는 햇살이 아주 예쁜 곳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남일대 해수욕장의 풍경들, 전체적으로 오래되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노산공원


다음으로 찾은 곳은 삼천포항 근처에 있는 노산공원입니다. 시골 동네에 있는 동네 뒷산 공원 같은 곳이지만, 겨울에 이곳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동백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인데요. 개체수가 일단 아주 많은 데다가 공원 자체를 꽤 신경 써서 조성한 느낌이었어요. 사천 출신의 시인 박재삼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과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지역 학당, 호연재도 있습니다.

공원 입구부터 산의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곳까지 동백으로 가득합니다. 빨갛게 물들어 활짝 피어있는 꽃들도 있고, 화려했던 시간을 지나 시들어가는 꽃들도 있습니다.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꽃잎들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아름답던 순간들은 지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꽃의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다시 피어나겠지요.

산책로를 따라 반대편으로 가면 사천 앞바다를 만날 수 있는데요, 삼천포항을 드나드는 여러 배들을 천천히 감상하는 맛이 쏠쏠합니다. 저도 잠시 벤치에 앉아 ‘바다멍’을 때려봅니다.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네요. 밥부터 먹어야겠습니다.


노산공원의 동백과 공원에서 바라본 사천 앞바다




사천진짜순대


초록창에 그냥 ‘사천 맛집’이라고 검색해서 나온 집들 중에 가장 땡겼던 순대국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사천진짜순대’는 착한 가격에 직접 만드는 순대가 들어간 순대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었어요. 배가 고픈 상태였긴 했지만 평균 이상의 맛집이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작은 위장을 가진 제가 ‘완뚝’을 할 정도면 맛집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랄까요.




사천 무지개해안도로/부잔교 갯벌탐방로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얼른 다음 일정을 향해 가봅시다. 바다를 끼고 있는 관광지라면 요즘은 어디나 만들고 있는 ‘무지개해안도로’가 사천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천의 이 해안도로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갯벌에 들어가지 않고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부잔교 갯벌탐방로’가 바로 그것인데요, 무지개해안도로를 조금만 따라 걷다 보면 마주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입구는 비록 ‘그 하트’ 조형물이지만, 그래도 나름 깔끔하게 꾸며진 탐방로 양 옆으로 색색깔의 바람개비들이 돌아가는 모습과 조금씩 물이 빠져가며 드러나는 갯벌이 특색 있게 다가옵니다. 무지개색 해안도로와 미묘하게 어울리는 느낌도 있고요.


무지개 해안도로와 부잔교 갯벌탐방로에서 본 갯벌




송포1357


잠깐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 뷰 카페에 왔습니다. ‘송포1357’은 꽤 최근에 지어졌는지 외관도 깔끔하고 주차장도 넓은 편이었어요. 바로 옆에는 유명한 선상카페 ‘씨맨스’가 있어요. 날씨가 포근한 편이어서 야외 자리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잔잔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슬슬 마지막 일정을 향해 갈 때가 됐나 봅니다.




사천바다케이블카


대망의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타러 왔습니다. 사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사천에 온 거라고 해도 무방하달까요. 해질녘에 케이블카를 타고 보는 노을을 상상하면서 여행 계획을 짰거든요. 케이블카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4시 40분경이었는데, 서쪽 하늘이 벌써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더라고요. 케이블카는 대한민국 국룰처럼 정해진 바닥이 막힌 캐빈과 바닥이 유리로 된 캐빈이 있습니다. 기왕 타는 거라면 역시 바닥이 뚫린 쪽이죠. 가격은 성인 기준 2만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빛이 가장 예쁜 시간대에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보는 삼천포대교와 물들어가는 하늘, 바다의 모습은 가격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사천케이블카는 특이하게 매표소가 있는 정류장이 가운데에 있는 방식입니다. B(매표소) -> C(아쿠아리움) -> B -> A(각산전망대) -> B 순서대로 운행된다고 보시면 되는데, 단순 왕복이 아니라 꽤 높은 산까지 올라가서 사천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각 코스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 심심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사천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시간 가까이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매표소 쪽으로 나왔습니다. 매표소에서 차로 잠깐만 가면 삼천포대교를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삼천포대교공원’이 있어요. 딱 알맞게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색인 듯 주황색인 듯 분홍색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삼천포대교와 느리게 떠다니는 케이블카의 모습은 가슴이 벅차오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뿐일까요, 잔잔하게 흔들리는 파도에 부서지는 석양의 빛망울과 은은한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까지, 모든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순간이었습니다.


해질 무렵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삼천포대교공원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도 어느덧 끝나가고, 황량했던 나뭇가지에는 새순들이 매달리는 시기입니다. 저는 최근에 퇴사를 결심했어요. 상반기 중으로는 아마 소속이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 인생의 절반 정도를 달려왔다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때라고 생각했어요. 여행과 사진,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단순히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던 그것들을 이제는 저의 일로써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퇴사에 대한 면담을 진행한 후에 처음으로 찾은 여행지가 바로 사천이었고, 사천의 눈부신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저의 결심과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나는 이렇게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니며 예쁜 것들을 보는 것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구나’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영상을 제작하고, 글을 쓰는 것, 당분간은 그런 생활을 지속하게 될 것 같아요. 도저히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인생 후반전의 첫 여행지였던 사천은 저에게도 큰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사천에서 만난 바다들은 파도가 한결같이 잔잔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남은 인생은 너무 폭이 크지 않은, 사천의 잔잔한 파도 같은 형태로 살아가고 싶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최근에 시작한 유튜브에도 사천 여행 영상을 올렸습니다. 영상으로도 사천을 만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유튜브 영상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천 여행 브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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