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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Oct 22. 2024

 가을 통영 여행기

유명 관광지부터 어촌마을까지

전국의 모든 시, 군을 여행해 보는 것이 목표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원대한 목표의 첫 단추로, 제가 살고 있는 부산 인근 경남의 모든 지방을 가보기로 했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 네 군데 남은 경남 여행지 중 한 군데였던 통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당일치기 일정이어서 통영의 많고 예쁜 모든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유명한 관광지부터 로컬향이 가득한 어촌마을까지, 나름 스펙트럼이 넓게 가보려고 노력을 했고, 생각했던 대로 만족스러웠던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 통영RCE세자트라숲


이곳을 통영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제가 자연, 숲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통영 시내의 유명 관광지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여행으로는 잘 찾지 않는 것 같아서였어요. 평일이어서 그랬을까요, 역시나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나뭇잎에 내려앉은 가을을 보고 느끼고 왔습니다.


입구 쪽부터 산책로를 따라 나있는 메타세콰이어, 습지에 있는 갈대와 연꽃, 아름드리나무 아래의 쉼터 등, 모든 공간들이 편안한 마음이 들게 잘 조성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동남아시아 고어로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세자트라Sejahtera'가 잘 어울리는, 담박한 느낌의 공간이었습니다.



세자트라숲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다와 가까워서이기도 했어요. 한 바퀴 구경을 끝낸 후, 숲과 마주하고 있는 바다를 걸어봅니다. 잔잔한 파도소리, 바람이 실어다준 바다냄새,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의 비행, 통영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네요.




- 삼도수군통제영


통영 지명의 유래가 바로 이 ‘통제영’에서 왔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부끄럽지만 저는 이번에 통영을 여행하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조선시대 해군본부에 해당하는 명칭이 지명으로 이어진 사례라고 하니, 통영의 정체성을 느끼기엔 이만한 곳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곽에 위치한 세자트라숲과는 달리, 통제영은 통영의 중심에 위치한 관광지들과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입구에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보이더라고요. 


한옥을 좋아하는 저에게 역사가 묻은 통제영의 모든 건물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세병관'은 압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건물 자체의 크기도 압도적일뿐더러, 명판에서 느껴지는 기개가 있습니다. 세병관에서 보는 통영 시내의 모습도 예쁘고 통제영의 오래된 나무들과 건물들이 액자처럼 보이는 풍경도 좋았어요. 천천히 걸으면서 하나씩 눈에, 기억에, 담아봅니다.




- 동피랑벽화마을


아마도 '통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장소인 동피랑도 찾아봅니다. 통제영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천천히 걸어서 이동해 봤어요. 생각해 보면 전국 각지에 이런 분위기의 오래된 마을들이 많은 것 같은데(부산에는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문화마을'이 떠오르네요),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가게들이며 카페, 식당 등을 보니 역시 크게 다른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벽화와 가게들의 간판,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인 '동포루'에서 보는 통영 앞바다의 풍경 덕분에, 한 번쯤은 와볼 만한 곳 같았습니다.




- 카페 모카디코Mochadicco, 그리고 강구안


잠시 휴식을 취하러 카페로 향합니다. 강구안 해변에 위치한 카페 모카디코Mochadicco는 통영 여행하기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어요. 통영 앞바다와 동피랑벽화마을을 마치 액자처럼 볼 수 있는 창이 있어서, 감상하며 쉬기 좋더라고요. 커피와 디저트도 만족스러운 맛이었고요. 다만 가격대가 조금 비싼 편이라 감안하고 찾으셔야 될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휴식 후에 강구안 해변을 걸어봅니다. 'ㄷ'자 형태의 항구를 가로지르는 '강구안브릿지'도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이순신 장군과 역사적인 접점이 있는 지방들이 그렇듯, 거북선 형태를 딴 배도 정박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잔잔한 파도와 갈매기 소리, 진한 바다냄새가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하는 곳이어서 좋았어요. 적당히 관광지스럽고 적당히 로컬감성도 있는 곳이어서, 시간 여유만 있었다면 더 오래도록 있고 싶었습니다.



- 통영케이블카


남쪽으로 차를 몰아 통영케이블카를 타러 와봅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을 감상하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사천을 여행했을 때에도 케이블카를 타고 만족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요. 시설이 조금 오래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며 보는 통영의 풍경은 일상적인 높이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케이블카를 타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길진 않았습니다. 종착점인 미륵산 중턱에 내려서 한 층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옵니다. 규모는 작지만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산과 숲, 멀리 보이는 통영 바다를 감상하기엔 충분했어요. 이번에는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한층 아래로 내려가봅니다. 매점과 야외테이블이 있는 휴게공간이 나오더라고요. 저도 음료수를 하나 사서 잠깐 자리에 앉아봤어요. 작은 샛길로는 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고 땅으로 떨어질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이 보입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아니지만 정겨운 통영의 이미지와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 카페 안트워프, 그리고 풍화리 어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많이 짧아졌어요. 오후 늦은 시간에 맞춰서 관광객 입장으로는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곳으로 차를 몰아봤습니다. 통영의 서쪽에 있는 '풍화리'는 관광지의 느낌이 거의 없는,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내비게이션에 찍어놓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도 옆에 보이는 작은 항구와 마을의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빼앗깁니다. 결국 잠시 차를 세워서 감상하다가 가기로 했어요. 



'카페 안트워프'는 이곳 풍화리 해안도로에 위치한 카페입니다. 사장님이 예전에 '인간극장'에도 출연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엔틱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사장님이 내려주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액자처럼 나 있는 창을 통해 어촌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감상해 봅니다. 사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온화하신 성품을 가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겠더라고요. 온기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뭔가 아쉬워서 근처에 있는 바다를 더 구경해 보기로 합니다. '모상항'에 도착하자 슬슬 해가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바다에 내려오는 햇빛이 예쁜 윤슬을 만들어냅니다. '보여주기 위한' 관광지 형태의 통영이 아닌, 진짜 통영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마주하고 온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앞서 다녀온 통영의 모든 장면들이 좋았지만, 외지인의 발길이 드문 이곳이야말로 통영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달까요.




- 통영 여행을 마치며


이번에 방문하기 전에는 통영의 이미지에 약간의 편견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낀 관광지들이 흔히 가지는 인상 같은 것 말이죠. 일정상 통영의 모든 관광지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짧은 여행임에도 제가 가졌던 색안경을 깨주었어요. 특히 주로 혼자 다니면서 조용한 공간을 좋아하는 저의 취향을 저격해 버린, 마지막에 다녀온 풍화리 일대의 장면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새로운 장면과 감상을 좋아하는 저에게, 여러 번 방문하는 여행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통영 여행기를 쓰면서, 다음번의 통영 여행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어요. 통영에 있는 작은 섬들도 가보고 싶고, 이번에 가지 못했던 관광지들도 한번 방문하고 싶어 졌어요. 다음엔 조금 여유 있는 일정으로 말입니다. 


유독 더웠던 여름을 핑계로 좋아하는 여행을 한동안 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통영 여행을 계기로 제가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벌써 다음 여행지를 고르고, 계획하고 있어요. 다시 새로운 여행기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주시면, 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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