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봉근 Aug 04. 2022

20분째 커서만 깜빡이다, 힘겹게 첫 문장의 떼었다.

열심히 글을 읽겠다는 핑계로 아이패드 미니를 샀다. 4개 월 전이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4개월 동안 두 권의 전자책을 읽었다. 일주 일에 한 권씩 책을 읽겠다는 야심 찬 각오는 아이패드 미니가 내 손에 들어오던 날 잊었다. 책 값을 아끼겠다며, 밀리의 서재를 구독했지만, 결국 전자책 한 권을 20,000원씩 주고 읽은 꼴이다. 종이 책을 사도 세 권을 샀을 돈이다. 책상 위에 올려 두면 보기도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7월부터는 부쩍 자주 펼쳤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읽고, 권당 단가를 낮춰야겠다.


이제야 브런치를 내려받았다. 나를 브런치 작가로 뽑아준 담당자가 알았다면, 브런치 작가를 반납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몇 번씩 떨어지고, ‘브런치 작가 되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며 하소연하던데 말이다. 열심히 글을 채우지는 못 할 망정. 읽기라도 브런치를 읽지. 브런치는 안중에 없고, 밀리의 서재를 읽고 있다니 유감이다.


지긋이 앉아 글을 쓴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하다. 마지막 여행이 꽤 오래전이란 말이다. 사실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여행일기가 어울린다. 그날의 그리움과 감정을 잡아 두고자 여행 중에는 일기를 빼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첫 시작은 11년 전, 자전거 전국 일주였다. 필사 적이었다. 뜬금없는 곳에 멀뚱이 텐트를 치곤 했다. 예를 들자면 소방서 주차장,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의 뒷마당, 동네 면사무소 주차장. 뭐 이런 곳들이다.


해가 저물면 고단한 하루 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해가 저물 때, 내가 있는 곳이 그날이 목적지였다. 적당히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을 만한 곳에 텐트를 쳤다. 뜨끈뜨끈한 텐트 안에서 작은 손전등에 힘입어 매일매일 읽기를 썼다. 너무 피곤하고 잠이 올 때는 휴대폰 녹음기를 켜놓고, 눈을 감은 채 일기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꺼져버린 휴대폰을 켜보면, 쌔근쌔근 잠자는 숨소리만 여섯 시간씩 녹음되어 있었다.


꾸역꾸역 여행기를 쓰다 보면, 나 스스로를 위로할 때가 많다. 마치 내 안의 다른 자아가 나타나 그날의 나를 위로한다. 아쉬웠던 순간, 후회되는 순간, 하나하나 곱씹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때로는 아주 오래전 나를 떠올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를 그려본다.


사실은 이게, 아이패드 미니를 사고 4개월 만에 브런치를 내려받은 이유이다. 몹시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렇다. 그래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싶어 백지를 열었다. 여행 중에는 그날 있었던 일이라도 끄적일 텐데, 뭐라도 글은 쓰고 싶은데 딱히 쓸 말이 없어, 한 20분을 깜빡이는 커서만 쳐다봤다. 그리고 힘겹게 첫 문장을 떼었다.


반성하는 날들이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미약한 성취로 지나치게 자기만족 하진 않았나. 거울을 보며 너무 과대평가하진 않았나. 이제 철이 들어야지 않겠나. 뭐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도 더욱이 암울했던 1년 6개월 전 이맘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 이미 지난 일은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것. 앞으로 계속 잘 될 것이라 믿는다는 것. 뭐 그렇다.


꼬물꼬물 정수리에 맴돌던 말들이 손가락 끝을 타고 백지에 놓였다. 잘했다. 오늘의 끄적임이 나를 다독인다. 괜찮다 말하고, 잘 될 거라 말한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가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