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철이 든다. 해마다 이맘 때면 늘 반복하는 기전이다. 일 년, 열두 달, 한 해 동안 걸어온 발걸음이 하나 같이 맘에 안 들고, 아쉽고 그렇다. 작년 이 때도 똑같이 이렇게 다짐을 거듭하고, 잔뜩 성장했을 지금을 상상했다. 그때는 이미 모두 실현하고 난 현재를 상상했다. 해 낸 것은 왼손 하나면 다 꼽는데 못 한 것은 손가락, 발가락 스무 개를 다 꼽아도 모자라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작심 3일을 1년 내내 이어가고 있다는 점 이다.
다시 내년을 다짐하는 12월의 마지막 주로 돼돌아와. 이제는 내 그릇을 조금 인정하고, 다음 해를 해내고자 한다. 해내고 싶은 것을 줄줄이 나열하기보다 꼭 해 낼 수 있는 것을 꼽아 본다. 이 것을 알아 차린 것 또한, 한 살 더 먹는 동안 성장한 결과라 생각하자.
혼자 살고 있는 원룸 한편에 커다란 파티션을 세우고, 4개월 정도 집에서 일을 했다. 나는 충분히 잘할 거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도대체 뭘 했길래 매일매일 그렇게 일할 시간이 없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내 그릇이다. 충무로에 작은 1인실 공유 오피스를 하나 계약했다. 집에 있던 커다란 모니터와 노트북 두 개를 모두 사무실로 옮겼다. 커다란 파티션 품 안의 내 책상이 이렇게 넓었던가. 텅 빈 책상이 허전하다.
그것도 잠시다. 아이패드와 몇 권의 책이 놓은 넓은 책상 앞에 앉았다. 마음이 편안하다. 모니터와 노트북이 없으니, 이 공간이 더욱 아늑하고 정이 간다.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글이라도 하나 더 쓰고 싶고, 책이라고 한 자 더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