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진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정성껏 돌보던 화초들이 자꾸만 죽어나갔다. 햇빛도 잘 밭고, 물도 제때 잘 주는데 왜 그랬을까? 나중에야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었다. 식물에게는 바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의 작은 깨달음의 과정이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엄청난 규모로 일어났었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에 지구 환경을 본뜬 거대한 밀폐공간이 지어졌다. 미국 억만장자가 한화 4160억 원을 지원해 지구 멸망을 대비해 만든 작은 지구로, 4000평 정도의 규모에 바닷물과 열대우림, 사막, 농경지를 포함한 5개의 생물 군계와 3000여 종에 달하는 생물을 조성했다. 7년간 400여 명의 전문가가 동원되었고, 1991년에는 남녀 각각 4명씩 전 세계에서 선발된 8명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2년 동안 외부와 일절 접촉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생활할 계획이었다. '바이오스피어 2'라고 불린 이 거대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을까?
16개월 차, 산소 농도가 14.5 % 까지 떨어졌다. 동식물의 떼죽음으로 이어지며 생태계 90%가 궤멸했고, 연구원들은 고산병뿐 아니라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증까지 경험했다. 산소 농도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콘크리트가 이상화탄소를 계속 흡수했던 것인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유리 돔은 햇빛을 절반 정도만 통과시켰다. 바람의 부재도 원인이었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 자란 나무들은 뿌리가 깊지 않아 생명력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도 많은 실패비용을 감수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은 이것이다. 폐쇄된 공간 내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연결되어있다>의 저자 톰 올리버는 지구의 프로세스가 연결되어 있어서, 내부 환경을 통제할 계획을 아무리 꼼꼼히 세우더라도, 애리조나 사막의 유리로 만든 값비싼 생물 군계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비단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얼마나 사회 속에서 상호보완적이고 의존적인지 관찰한다면 사회와 떨어져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에서는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프로세스를 설명하기 위해 바이오스피어 2 연구 외에도 자연현상, 우리 몸의 미생물 군계, 소셜 네트워크와 사회적 현상 등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 톰 올리버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주변 세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인데,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과 자라온 환경, 속해있는 학교나 직장, 커뮤니티 등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떼고 나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특히 누구와 같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커다란 시스템적 문제의 직면해서도 환원주의적-개인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자연을 하나씩 분해하고 분석하려 애쓰는 것과 같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연결된 세상이 물 샐 틈 없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연결된 세상은 거대한 기계와 같아 개별 부품이 뒤죽박죽 놓인 게 아니라 서로 의존성이 높은 부품들이 역동적으로 이뤄내는 시스템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한 가지 방식으로만 세상을 보도록 정해져 있었고, 이제는 이 인식에 갇혀버린 듯하다. 우리는 지구와 그곳에서의 우리 위치를 생각하는 관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p. 167-168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정체성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관점의 변화다. 환원주의적,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벗어나 시스템적, 전체주의적 접근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큰 숲을 볼 때, 단순히 나무 하나하나를 분석할 때는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중심성에서 벗어나 연결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훈련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톰 올리버는 오직 상상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상력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직 이 생생한 상상력을 통해서만
과학적 사실들을 통합해 우리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다 정확한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다.
오직 상상력만으로 우리는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볼 수 있고,
별개의 ‘나’라는 망상을 없앨 수 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25p.
구체적으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연결에 관한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는 명상법 2)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3) 친구와 가족을 직접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 그 외에 영국의 싱크탱크 뉴이코노믹스재단(NEF)이 발표한 '행복과 안녕을 증진하는 간단하고 실천하기 쉬운 활동 목록'도 추천한다.
NEF에서 행복과 안녕을 추구하기 위한 이 다섯 가지 방법 -사람들을 사귄다, 활동적으로 생활한다, 주위를 의식하고 관심을 갖는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친절을 베푼다- 모두 어떤 것과의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이런 공명과 미러링 효과는 자연에 푹 빠졌을 때, 깊은 온정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감할 때, 심지어 같은 책 혹은 글을 읽으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 전화기, 컴퓨터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인지를 통해 감사한 마음도 생길 수 있다.
우리 생활에서 더 큰 세계와의 연결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다 보면,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생각을 공유하기는 더 쉬워졌고, 그럴 때 우리는 더 빠르게 혁신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은 동시에 바뀔 수 있고, 덕분에 도미노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신기술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쉬운 선의의 행동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위험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면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연결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협력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 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그전에 나만 바라보던 시각을 주위로 돌리는 일, 내 생각의 경계선을 느슨하게 만드는 일도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는 깊숙이 연결된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제시할 것이다. 앞의 인용문을 당시의 의도가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사실을 바탕으로 마음을 ‘바꾸길’ 바란다. 생각의 관점을 바꾸고, 독립된 ‘나’라는 생각의 끈을 조금 풀고, 우리 주변에 숨겨진 모든 연결고리에 눈을 떠 보자. 그러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하며 공정한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리라 믿는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저자 서문 중
참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톰 올리버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