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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Dec 15. 2022

아무튼 일당백_ 첫 번째 이야기

1. 입사 ( feat. 연봉 후려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1. 입사 ( feat. 연봉 후려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원래는 그간의 이직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물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갔다가 수십 혹은 수백 개로 보이는 독립출판 부스를 둘러보며 문득 이토록 다양하고 유니크한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굳이 내 이야기까지 세상에 꺼내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Seoul Publisher's table ; 독립출판 서적 박람회) 


한 명의 비조젹형 인간의 릴레이 퇴사 이야기가 무슨 효용이 있을까 싶은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꽤 크게 회의감이 들었던 즘, 또 한 번의 퇴사를 하게 된다. 10번의 퇴사 중 최악의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이었다. 다시는 조직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치가 떨렸는데 과거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이 모든 것을 회피하기에 급급해서 벌써 이직을 했었을 테지만, 문득 이번에는 단단히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기특한 결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최악의 퇴사 경험에 결정적으로 일조한 사람은 회사의 대표였는데, 이 대표와 사실 2016년 이미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일해봤던 대표인데 다시 한번 일하게 되어 굳이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는, 다시 말해, 나는 왜 나에게 최악의 경험을 준 사람과 다시 일하게 되었을까 하는 스스로의 안목 없음에 대한 자책으로 인한 고통이 더 컸다. 


그렇다. 나는 나를 생각보다 대단하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근무 마지막 달 체납된 급여를 퇴사 후 두 달 뒤에 모두 지급 완료받기 까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었는지, 왜 나는 그런 결정을 했고, 더 일찍 퇴사를 하지 않았었는지 제대로 파헤쳐야 할 것 같은 미지의 의무감과 싸웠던 것 같다.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불필요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는 자책감으로 가득 찬 시간을 겪으며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급여임에도 언제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했던 경험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회피 기제가 워낙 강한 사람이라 이번에도 “이직"이라는 최단경로도 빠르게 당면한 문제를 빠져나갈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생각보다 꽤 컸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파헤치고 정확하게 왜 내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기필코 알아야겠다는 내 안에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던 승부욕 같은 ‘악'이 잔뜩 올랐던 것 같다. 게다가 지독히 사적인 나의 최악의 경험이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교훈을 동반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론이 무척 길었지만,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그간 내적으로 수없이 자문했던 질문에 대한 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정체 모를 것들에 대해 일단 적어보고 나름의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원래 하던 데로 또 한 번의 이직으로 회피하거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연달아 보면서 손쉽게 회피할 수 있었지만 불현듯 불편한 감정이 내 코앞에서 '너 아직 숙제 남았어'라고 들이대는 것을 도저히 묵시할 수 없어 그냥 앉아 적어 내려가기로 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디테일은 각자 다르겠지만 큼직한 구조 가운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의 위안이 되기를 되는 마음으로 굳이 쓰기 시작했다. 





2016년 나는 피자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턴오버가 심했던 매장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인사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케팅 담당 직원이 되었다가 때때로 총무팀 직원이 되기도 했으며 혹은 때때로 고객만족팀 팀장이 되기도 했다. 대기업에서만 십수 년을 몸담은 동거인 (호적상 남편)은 나에게 R&R을 분명히 나누라 누누이 잔소리했지만, 어느 날 문득 예상치 못한 이슈가 터지고 그 앞에 있는 내가 담당하게 되면 그날 이후 내 일이 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디서 맺고 끊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해 그냥 다 맡아하는 것이 편했던 일 욕심만 많은 미생이었다. 


나에게 2022년 최악의 퇴사의 경험을 안겨준 대표와의 첫 만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다른 유아동 브랜드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스치듯 만났던 인연을 빌미로 2016년 중순, 우연히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2015년 약 5개월 몸을 담았던 유아동 브랜드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퇴사한 지 2개월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고 일할 생각이 없냐는 앞뒤 없는 제안에 도대체 내가 무엇을 담당하게 되냐는 질문을 던졌던 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확하게 어떤 포지션에 특정 업무가 필요했다기 보단, 무작정 열정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갈아 넣을 사람 한 개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스타트업 1회 차 경험 미만으로 내가 열심히만 하면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가득 차 있던 나이브한 인간 감수성을 질질 흘리던 때였으므로  앞뒤 가릴 것 없이 와서 사람을 뽑아달라는 대표의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희망연봉이 어떻게 됩니까? 


그냥 큰 고민 없이 이전 직장 연봉에 10% 인상분을 더한 숫자를 말해 주었다. 

듣고 흔쾌히 알겠다며 내부적으로 의논해보고 다시 답해주겠다던 대표였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받은 뒤, 지금 당장은 회사 사정 상 당장의 희망연봉을 맞춰줄 수 없으니 시작은 내가 제시한 희망연봉에서 천만원을 깎은 연봉으로 일단 시작하자고 했다. 단, 3개월 수습기간 후, 다시 연봉 협상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 나는 채용이라는 업무를 해본 적도 없었다. 또한 일을 제안했던 대표와 직접적으로 일해본 적이 없으니 연봉을 천이나 후려쳤던 대표의 제안을 일부 납득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나 스스로 초반 업무 적응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감이 있었기에 수습기간 이후 다시 협상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쿨하게 수락했다. 


나이브했다.  


그렇게 천만 원이나 후려쳤던 대표는 월급여 지급 기준을 연봉을 13개월로 나눠서 지급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상여금 명목으로 추석과 설에 급여의 50%가 추가로 지급된다는 사실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현금흐름이 늘 막막했던 대표에게 하루라도 적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2016년의 꼼수를 2022년 이제야 깨닫는다. 


어쨌든 연봉을 13개월로 나눠 지급한다는 조건까지 감안한다면 희망연봉에서 천만 원 이상 후려쳤음 애도 나만 열심히 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을 품은 인간의 두 번째 막장 스타트업 경험의 막이 오른다. 




첫 번째 교훈 :  회사에서 연봉/13개월을 제안할 때. 

모든 것을 떠나서 연봉 가지고 꼼수 치는 곳들은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거를 것. 

이왕 풀타임으로 일할 것이라면 연봉 자체뿐만 아니라 지급 시스템이 명확한 곳으로 택할 것 

1년은 12 달입니다. 
연봉을 13으로 나눠서 월급을 주겠다는 회사가 있다면 무조건 거를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추석 설날 명절 상여의 생색을 나는 듯 하지만 까놓고 보면 그냥 내 연봉입니다. 노 착각

다시 말해서 상여를 받는 것 같은 느낌만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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