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3월 11일부터 낭독을 시작한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이 4월 29일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거진 2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내 나라말이 아닌 책을 이렇게 오랫 기간을 두고 읽은 건 학부 때 전공 교과서 말고는 또 있었을까? 게다가 매일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달 동안 소리를 내어 읽은 영어 원서는 단연 이번 책이 처음이다. 책의 재미라는 게 원래 당면한 시점의 나의 경험과 사고 체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알고 있었다. 이번 낭독 모임에 참여한 7명 모두 이번 책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너무 재밌게 읽은 책"으로 평가해서 신기했다. (feat. 동기간 함께 읽었던 사람들이 동시에 무척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의 확률은??)
사실 밀리의 서재에서 “마음을 치료하는 법"이라는 다소 밋밋하고 올드 한 느낌의 제목을 달고 있는 한글 번역본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원서와 번갈아 읽다 보니 한글로 번역되지 않는 저자의 특유의 어휘(?)나 상황이 아예 생략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대략의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짧은 한 구절이라도, 영미 문화 특유의 표현법을 한국식으로 번역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구구절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이랄까? 게다가 그 구절을 생략하더라도 전체 문맥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나라도 생략을 했을 거란 결론이다. 한글 번역본에는 없지만 원서에만 있는 저자 특유의 표현들을 그것도 매일 새벽 조금씩 낭독을 하다 보니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낭독은 어쩌면 가장 적극적으로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면서 읽는 방법 같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낭독을 하다 보니 혼자서 한국어 책을 읽으며 엄청 대충 속독으로 읽어 내려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초에 낭독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예전에 책을 읽고 밑줄을 긋더라도 나중에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자주 마주치니 다른 방식의 책 읽기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점에서 낭독이란 새로운 방식이면서 읽고 흘리지 않고 조금은 더 오래 잡아챌 수 있는 방식의 책 읽기란 생각이다.
이 책은 수년간 다양한 직업을 탐색한 끝에 결국 상담사로서 소명을 찾게 된 Lori gottlieb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자전적 에세이지만 책의 구성이 소설 혹은 시트콤의 에피소드 구성과 흡사하다.
함께 낭독을 진행한 별사탕님의 언어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내용이 그간 출간된 심리학 책들보다 새로운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 본인이 상담 치료를 받는 내용 자체는 신선하다고 평가 한 점에 낭독 멤버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렇다. 별사탕님이 말했 듯, 이 책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네 명의 내담자와 상담치료를 진행하는 내용과 동시에 자신이 다른 상담사에게 상담치료를 받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네 명의 내담자가 상담치료받는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번갈아 나온다. 통상 기존의 심리학 책에서는 내담자의 케이스를 다룰 때, 한 챕터에서 해당 내담자의 문제와 해결까지 모두 다루고 끝냈던 것에 비해 이 책이 여러 캐릭터의 내면의 변화를 책 전체의 분량으로 번갈아 가며 다룬다는 구성 자체가 소설 같다는 느낌을 준 것 같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젊은 신혼부부, 삶의 의미를 읽고 다음 생일에 자살하려는 노인, 자기애에 빠진 할리우드 프로듀서, 알코올 중독과 관계 파괴의 악순환에 빠진 젊은 여성 등, 책에 나오는 내담자나 저자의 삶이 이 책을 매일 낭독한 우리 7명에게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이 책을 읽다 보니 각 내담자가 표출된 문제 행동 이면의 근본적으로 비틀려버린 내면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이 지점이 꽤 신기했던 것 같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내면의 고통이 현재 나의 것과 비슷할 수 있다니~
상담가 본인도 상담치료를 받게 되는 이야기가 신선했다. 자신의 전공분야니 자신의 상담사가 저자에게 상담 치료 차원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할 때마다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의 심리와 심리 이슈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저자도 관계의 문제가 생겼지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한국에서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읽으며 반드시 많이 안다고 내 삶의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던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각자 인상 깊었던 내담자와 그 이유를 나눠보았다.
# [내용과 관련하여] 상담사 vs 부모
상담가와 부모의 역할이 부모의 역할과 비슷하더라. 책 제목 자체가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는 건데 결국 그 말을 하게끔 이끌어 내기 위해 상담사의 역할이 지대하더라.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정답을 정해주지 않고, 사안에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사과해 주지도 않으며 다만 좋은 질문을 던지고 내담자가 스스로 발견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이 자체가 부모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내용과 관련하여] 시한부 줄리
모든 것을 다 이룬 삶의 정점 같은 시점에 시한부 통보를 받게 된 줄리와 그의 남편의 이야기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을 사는 데 내가 이 오늘의 가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자각과 반성.
이전에 읽은 원서, When breath becomes air의 저자가 경험한 죽음을 맞이하는 맥락과 결에 가장 흡사하게 느껴졌던 내담자.
#[내용과 관련하여] 상담치료에서 느껴지는 부의 계층
내담자들의 배경은 공통적으로 모두 충분히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알고 보면 이 비싼 상담사를 지불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음.
이 책의 제목이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인데 책 속 내담자와 저자처럼 고학력에 높은 수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은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 이런 지점에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소위 중보기도나 고해성사를 떠올려보면 계속 말하게 한다. 결국 계속 사람이 계속 말하게 된다는 점이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토로하고 그 행위 자체만으로 자신의 진실한 지점을 만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결국 말하는 것! 계속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좋은 삶에 기본 요소가 아닐까?라는 생각!!
승현의 이야기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영어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일인데 결혼으로 인해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영어를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인프라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새벽 원서 낭독이 지방에서도 계속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갈급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줬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읽는 게 훨씬 재밌다는 생각!
혜영의 이야기 : 40대 중반까지 평생을 아침에 일어나는 건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워낙 새벽에 정신이 각성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리추얼이나 루틴을 만들 수 있는 수만 가지의 포맷들은 이미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참여할 동력이나 흥미 자체가 없었다. 자기계발서도 보면 60일 정도를 반복하라고 하던데, 이 책을 읽은 지 거진 두 달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6시 1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저도 무척 재밌었고요. 함께 해서 너무 즐거웠던 두 달이었습니다.
자 다음은 Morgan Housel의 <Same as ever>입니다!. 이번에도 재밌을 거예요! 다시 만나요!
매일 원서 낭독은 룰루랄라김치치즈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