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위안
실연의 아픔은 참으로 크다
힐링 힐링 떠들어보아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여자는 여자로 남자는 남자로 해결하라 하는 말이 있다.
즉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해결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감정 정리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어떤 선남선녀를 만나도 예전의 연인이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어떤 장소에 가도 과거의 그 또는 그녀의 유령이 계속 배회하는 경험을 실연을 겪은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결국 이걸 해결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한 선물인 망각이라는 놈 때문에 자연스레 극복하게 된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과 비슷하다 할까.
그런데 그 시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랑도 있다. 지워지려는 기억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주인공 팻(브래들리 쿠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의 경우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답답한 케이스다. 팻은 여느 날처럼 퇴근하던 길에 집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아내를 목격한다.
이에 분노한 그는 아내의 정부에게 폭행을 가하게 된다. 남자라면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싶은데.... 그는 이일로 직장도 집도 잃고 아내에게도 버림받는다. 심지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환자 취급까지 당하며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한다. 정말 미치고 폴짝 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성실히 치료받을 것을 약속한 후 간신히 퇴원하게 된 팻! 하지만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옛 아내를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그런 상태의 그에게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라는 미망인이 등장한다. 그녀 역시 남편을 잃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팻에게 계속 접근하는 그녀! 티파니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며 댄스 경연대회에 같이 출전할 것을 팻에게 권한다.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런데 여타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주인공들은 결코 선남선녀가 아니다.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이다.
달콤한 방법으로 사랑을 쌓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니 사랑을 쌓아간다는 느낌보다는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간다는 느낌이다.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연의 아픔을 겪었거나 연인과 냉전 중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영화다. 아니 모든 연인들이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문제없는 커플이 얼마나 있으랴
이 영화로 티파니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상을 받을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팻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 변신이 개인적으로는 더 훌륭했다 생각한다. 전작들에서 밝고 자신만만한 댄디가이 역으로 많이 출연했던 자신의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는 여지없이 부숴 버린다. 수시로 감정의 기복을 넘나드는 정서불안의 모습을 너무 과하지 않게 보여준 그의 연기력이 좋았다.
또 이영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편집과 촬영이다. 상황과 분위기에 맞추어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도록 숏의 완급을 잘 조절한 점이 돋보였다.
아쉬운 점이라면 결말인데 이해는 가는데 너무 빠르달까? 두 사람의 해 패 엔딩이 조금 이른 감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진한 키스신으로 끝나는데... 오히려 좀 여운을 남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이 영화에서는 연기의 신이라 할만한 로버트 드니로가 등장한다. 나는 그의 연기를 보면서 너무 튀지도 묻히지도 않는 그의 존재감이 참으로 좋았다. 명배우는 자신뿐 아니라 영화 전체 속 자신의 역할을 정말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로버트 드 니로를 보며 알게 되었다.
드디어 봄날이 왔다. 혹시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남녀가 있다면 이 영화를 관람해 보시길. 영화 제목처럼 구름 속에서 빛나는 한줄기 햇살까지는 발견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조금은 힐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