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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Aug 10. 2021

누군가 있었다

납량특집


어렸을 때 오빠, 언니와 함께 오빠 방에 모여 ‘전설의 고향’을 즐겨 보았다. 티비를 틀어놓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매주 새로운 귀신 이야기를 보곤 했다. 언니는 ‘저건 다 거짓말이야, 뭐가 무섭다고 그래.’라며 웃었고, 오빠는 갑자기 ‘왁’ 소리를 지르며 놀렸다. 여섯 살쯤이었을까, 하루는 한참 티비를 보는데 소변이 마려웠다. 언니에게 같이 화장실을 가자고 졸랐지만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화장실에 가려면 불 꺼진 거실을 지나야 했다. 결국 참다못해 혼자 뛰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일을 보고 다시 방으로 가려는데 거실 구석에 희끄무래한 물체가 보였다. 화장실 바로 앞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언니가 이불 뒤집어쓰고 귀신 인척 해.”

“어디? 한 번 가보자.”

엄마와 함께 거실에 나가보니 아까 보았던 흰 물체는 없었다. 얼른 오빠 방으로 들어가 언니에게 따졌다.

“언니가 그랬지? 언니가 이불 뒤집어쓰고 서 있었지, 나 놀리려고!”

“나 아니야, 내가 왜? 나 방에서 오빠랑 티비 보고 있었어.”

“아니야, 언니가 그랬잖아.”

“아니라고!”

언니와 오빠는 자꾸 우기는 나를 보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막내가 잘못 봤나 보네하시며 달래 주셨지만 나는 너무 억울했다.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 가자 엄마의 외출이 잦아졌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날이 많았다. 언니와 함께 쓰는 방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도 피아노 소리가 자꾸 들렸다. 작은 말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그 소리를 참지 못해 현관문을 열고 문 앞 계단에 앉아 누군가 집에 오기만 기다렸다. 한 번은 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앞집 아주머니에게 들켰다. 그 아주머니가 ‘아이가 혼자 있는걸 무서워하나 봐요.’라고 엄마에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혼이 났다. 그래서 앞 집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에 달린 렌즈로 밖을 내다보다 사람이 없어지면 다시 나오곤 했다.

집에 돌아오신 엄마는 ‘우리 막내는 왜 저렇게 겁이 많을까. 애가 기가 허한가.’라며 걱정을 하셨다. 내가 집에 올 시간에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모든 신경은 중학교에 들어간 오빠를 향해 있었다.

밤에는 귀신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누군가  가슴을  누르고 있기도 했고 장롱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책상 밑에서도 웅크리고 앉아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거나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눈을  수가 없었다.  존재가 귀신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있는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고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몸을 비트는 것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함께 방을 쓰던 언니는 대학생이 되어 오빠처럼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그 후로 가위에 눌리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 거의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 겨우 가위에서 풀리면 엄마 방으로 갔다. 너무 무서운 밤에는 엄마를 깨우기도 했지만 곤하게 잠든 엄마는 좀처럼 깨지 않으셨다. 그때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밤새 주기도문을 외우며 귀신을 쫓았다. 가위에 눌릴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날은 미리 엄마와 함께 자기도 했다.

어느 날 , 혼자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가위에 눌려 잠이 깼다. 그날도 엄마 방으로 건너가 엄마의 온기를 느낄  있게 가까이 누웠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엄마 쪽으로 등을 대고 누워 손을 옆으로 뻗었다. 선잠이 들었는데 손끝에 무엇인가 닿았다.  손가락 두 개만큼 작은 아기의 손이었다. 밤새  손을  쥐고 잤다.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은 비어 있었다. 우리 집에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도대체 누구 손을 잡고 잠이 들었던 걸까.

결혼을  후에도 가위에 곧잘 눌리곤 했다. 거의 2년에  번씩 이사를 다녔는데 가끔 서늘한 느낌이 드는 집들이 있었다. 그런 집에서는  달씩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릴 때보다는 담력이 커져서 밤새 주기도문도 외우고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방에 앉아 성경을 읽기도 했다. 나이가  수록 가위가 눌리는 횟수는 줄었지만 중학교 3학년  잡고   손의 느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후 첫날밤은 숙면을 취했다. 그 때문에 마음에 꼭 드는 집이었다. 몇 달쯤 지난 어느 날 2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도 들렸다. 나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올라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난겨울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날이었다. 술과 안주 냄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나의 불평 때문에 그런 날은 따로 자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약속과 다르게 남편은 안방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비어 있는 아들 방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아들 침대는 헤드와 왼쪽 면이 벽에 붙어 놓여 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벽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살짝 잠이 들려는 순간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벌벌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이라 그런가, 갱년기라 그런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도 못하면서 최선을 다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야! 안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나와! 내가 누군 줄 알아?! 이걸 확 때려버릴까 보다. 여기 내 집이거든! 꺼져!!’

귀신도 황당했으려나. 가위는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귀신보다 더 짜증 나는 술냄새를 생각하니 안방엔 들어가기 싫었다. 성질을 있는 대로 내서 이미 잠은 다 달아났다. 침대에 앉아 있다가 이사 후 처음으로 일출도 보았다. 귀신에게 한마디 했다.

“야, 해 뜨는 것도 보여주고 고맙다. 이제 가. 또 오면 죽는다.”

그날 아들 침대를 벽에서 떼냈다. 벽과 침대 사이에 문구가 들어 있는 서랍장을 놓았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구조가 되었지만 이제 한기는  느껴지겠지.


이제   집에서 작은 소리가 나는지 이유를 안다. 사람들이 만든 소리의 파장이 벽에 계속 반사되는데 집이 너무 조용하면  소리가 살짝 들리기 마련이다. 목조주택에 소리가 나는 것은 나무가 계속 움직이며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서늘한 느낌은 숙면을 방해하니 잠이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에 빠져 들기 쉽다.  상태를 사람들은 가위에 눌렸다고 표현한다.


이유를 알면 뭐하나. 나는 아직도 밤에 침대에 누우면 손과 발이 매트리스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자세를 잡는다. 누가 발을 잡아당길 수도 있으니 발은  이불 안으로 넣는다. 손바닥이 위로 향하면 누군가 손을 얹을까 봐 손바닥은 항상 아래로 향하게  위에 얹는다. 이불은 보통 목까지 덮는다. 이불을 덮기 너무 더운 밤이면 남편 쪽으로 등이 향하게 옆으로 눕는다. 그리고 배게 아래로 손바닥이 보이지 않게 손을 끼워 넣는다. 누워서 천장 구석을 눈으로 훑는 건 남편에게 들키지 않을  있다. 그래도 잠들기 전에 침대 밑에 누가 있는지 검사하는 건  부끄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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