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저항, 그리고 우리
우리 모두는 차별받는다. 편견에 의한 피해자이고 젠더에 의한 약자이며 차별받는 대상이면서 차별하는 주체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차별에 저항하는가?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지를 만져보고 싶은데 비닐에 싸여 있었다. 표지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종이의 질감만 상상하며 구입했다. 그냥, 사람. 그냥 우리가 모여 사는 이야기 같았다. 읽어 보니, 정말 우리가 모여 사는 이야기였다. 단지 그 ‘우리’ 안에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다른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만 달랐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을까? 항상 생각하고 그들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산다. 지하철이나 주차장에 그려진 마크를 보며 장애우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 뿐 왜 눈에 띄지 않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이다. 책에는 소외된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의 관심에서 소외된 가난한 이웃, 몸이 불편한 이웃,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이웃, 자식에게 버려진 이웃. 지금은 내가 아니지만 언제든지 내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고 이 편안함을 길게 유지할까에만 집중해 왔다. 눈에 보이면 신경만 쓰이는 이웃과 그들의 외침은 눈과 귀에 거슬린다며 외면했다. 나는 장애우를 위해 설치 된 시설물이 사용되는 것을 본적이 거의 없다. 그냥 저런 시설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사회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많아져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칭찬했다.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외면했다. 이 정도면 되었다 만족했다.
또 다른 우리가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이 정도 배려면 되었다며 따라오건 따라오지 못하건 상관하지 않고 속도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가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고 장애우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생 시설에 가두는 가장 쉬운 방법을 썼다는 사실은 모두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소외시킨 사람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같은 소리를 해댈 거냐며 윽박지르는 대신 왜 그들이 같은 주장을 하는가에 대해, 주장의 본질에 공감해야 할 때가 아닐까.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이것이 그나마 세상에 공감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갖는, 물론 나도 갖고 있는 가장 큰 오류가 아닌가 싶다. 책에 숨은 우리는 공감을 너무 객관화하며 살고 있다.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나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다며 왜 바뀌지 않는 거냐며 울분을 터트리지만 사실 그 현장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굴욕은 남이 나를 업신여기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자각할 때 찾아온다.
인간의 혐오는 제 몫의 굴욕을 남에게 돌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굴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혁명을 배울 수 있다.
작가는 사람이 받는 차별과 고통만 언급하지는 않는다. 도축장으로 끌려들어 가는 돼지에게 마지막 물 한 모금을 주고 눈을 맞추는 일, 그들에게도 감정이 있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심지어 ‘좋은 사람’이 아닌 ‘좋은 동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눈을 보며 탈육식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인간은 잡식임을 주장하는 자칭 동물애호가인 나의 차이는 용기이다. 용기의 부재가 부조리를 재생산한다. 굴욕을 배우지 못한 감정의 무지가 인간사회를 넘어 그 사회를 지탱하는 세상을 착취하는 잔인함으로 변질된다.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니 표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눈물 없는 나의 눈을 흐리게 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슬픔도 절망도 아닌 미안함이었다. 경고하고 권했지만 지하철에서 읽다 말고 고이 덮어 가방에 넣었다는 지인의 후기도 보았다. 그 흐려진 눈으로 더 또렷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또 책 속에 숨어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몽상가로 남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