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행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
잘나가던 00맨 출신.. 명문대 중퇴.. 고졸신화..
흔히 볼 수 있는 창업관련 기사의 제목들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포털 메인에 올라오는 기사의 제목들은
하나같이 창업자의 출신이나 학력을 강조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좀 더 뿌리에 접근해보자.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지역 수학경시대회 준비반이었던 나는(당시 수학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매일 방과 후에 따로 남아 분침과 시침의 각도가 135도가 되는 경우의 수를 찾고(도대체 왜 135도였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형이 걸어가는 아버지를 추월하는(이런 후레자식..) 시간 따위의 문제를 곧잘 풀어
담임선생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곤 했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수리는 꼭 서울대에 갈 겁니다. 못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라고 호언장담하시며
우리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를 안기게 했다.
하지만 난 결국 서울대에 안못갔다.
담임 선생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꼭 손에 장을..
어쨌든, 난데없이 과거사자랑질를 꺼낸 이유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로지 '좋은 대학'을 목표로 삶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것과
위 기사 제목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풀어보자면,
우리에게는 아주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삶의 프레임이 있다.
출생 - (조기)교육 - (열심히)공부 - (좋은)대학 - (좋은)직장 - (좋은집안과)결혼 - (빠른)임신 - 출산
- 이어서 - (조기)자녀교육 - (열심히)자녀공부....
이 틀에서 벗어나면 늘 주위의 관심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은 추후 '오지랖'편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보통 전문직이나 대기업, 혹은 공무원이 이 범주에 포함됨)에 다니고,
이후 좋은 조건의 배우자와 결혼 후 또 건강한 아이를 낳고
잘 기르고 잘 교육하는 것이 '평범한 삶'이라 하니그래서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들다
이를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만인의 관심을 사게되는 것이다.
난 이러한 현상을 '정상적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주목'이라고 본다.
전직 삼성맨이었다고? 변호사를 관두고 창업을 해??
그 좋은 대학을 중퇴했어??? 고등학교 전교1등인데 대학을 안 갔다고????
이보다 더 좋은 떡밥이 어디있나.
그러니 그 뒤의 땀과 노력, 창업 배경, 사업 추진 현황, 시장성에 대한 가치평가 등
핵심적으로 다뤄져야할 내용들은 오히려 뒷전이 되는 것이다.
허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중요한 건 본질이다.
그 기업의 제품/서비스가 좋은가? 매출 추이가 유의미한가? 등을 봐야지
창업자의 배경은 배경일뿐..
큰 의미가 없다.
물론,
경영진을 포함한 스타트업의 '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언론에서 주목하는 초점과는 약간 다르다.
전자가 이 스타트업이 '얼마나 성장가능성이 있느냐'를 본다면
후자는 이 스타트업이 '얼마나 대중들의 이목을 끄느냐'를 본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것과 주목받는 것은 다르다.
주목만 받다가 망한 스타트업은 너무나도 많다.
(물론 스타트업이 원래 대부분 망한다)
미국, 중국 등 창업이 활발한 주요 국가에서는
대학 중퇴, 고졸이 우리나라 대비 흔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배경만으로 주목하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창업자의 학력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제품에만 주목할 뿐이다.
비교 대상이 너무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널리 알려져있듯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는
모두 대학을 중퇴하였으며근데 하버드, 스탠포드
마윈, 레이쥔 등 중국 대기업의 창업자들도 학벌이 아주 좋지는 않다.
다만 그들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세상을 바꿔놨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힘겹게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뛰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 제목에 학벌과 경력 대신
제품이 먼저 나오는 기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