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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우니 Sep 29. 2016

나만의 동백림, 옥룡사지

계절 가을에 적어보는 봄 이야기



올봄엔 봄꽃을 감상하기 위해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나 홀로 새벽기차에 몸을 싣고 꽃향기를 쫓아 무작정 달려 간 적도 있었고, 벚꽃이 핀 서울의 모습들이 궁금해 이틀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뚜벅뚜벅 도보여행을 한적도 있다. 이렇듯 올봄엔 꽃, 꽃, 꽃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나만의 동백림'이라고 표기한 옥룡사지를 알게 된 건 전남 구례에서 광양으로 건너갈 때였다. 이전부터 '올해는 동백꽃을 못 봐서 정말 아쉽다...'를 연신 마음속으로 외쳤는데 웬걸? 동백꽃을 만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광양에서 무려 7,000그루가 넘는 동백나무를 만나게 됐다. 정말 크나큰 행운이었다.


화사한 매력에 그 인기가 대단했던 산수유, 매화, 벚꽃 등을 제치고 내게 최애라는 감정을 심어준 동백꽃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동백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이 뒤섞인 게 분명하다.  






옥룡사지는 광양시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뚜벅이 여행자들은 다소 찾기 어려운 곳이다. 하루에 배정된 버스도 몇 대 없을뿐더러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에 오고 가는 버스를 제외하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여를 달려왔기에, 귀중했던 광양에서의 시간들을 소모하는 데 있어서 옥룡사지는 큰 고민 덩어리였다. 더불어 광양을 찾은 모든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섬진강 물결따라 피어난 매화에 집중할 때 시간을 쪼개 다른 선택을 강행했던 나 자신에 대한 고민도 상당했던 것 같다.





오늘의 날씨는 흐림, 차디찬 겨울이 다시 돌아온 봄을 시샘하듯 아침 기온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옥룡사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모든 것이 새로운 광양의 풍경을 보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분이 말을 건넨다. 빵빵한 가방을 메고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모습이 딱 여행자 같아 보였나 보다.


※사투리 알못 주의※


"이른 아침부터 젊은 청년이 어딜가능가?"

"(당황) 네?? 동백꽃 보러 옥룡사지 가려고요."

"아이고 거길 뭣하러 간데~ 여거 광양은 매화가 유명한디!"


알고는 있었지만, 광양은 매화가 유명하다는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휘청댔다. 내 고집에 의한 선택들이 광양 여행을 망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나는 금세 생각을 바꿔먹었다. 할머니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광양이지만 내겐 모든 게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라 굳게 믿고서 붉은 낭만의 숲길, 옥룡사지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옥룡사지는 '고요' 그 자체였다. 나를 제외한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 없었던 붉은 동백림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됐다. 자연이 주는 고요함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하나, 둘 내딛는 발걸음도 조심하게 됐고 평소 수없이 눌러댔던 카메라 셔터도 최소화했다.





땅에 떨어져도 예쁜 동백은 꽃말도 참 아름다웠다.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라는...' 글귀로 내 마음에 낭만의 꽃길을 내어줬다. 매화나 벚꽃과 같이 풍성한 맛은 없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진하게 물들이는 매혹적이고 진실된 매력이 동백에게서 느껴졌다.





수백,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숲을 걷다 보니 저 멀리서부터 내 귀를 자극하는 새소리가 들렸다. 이 친구의 이름은 동박새라고 하는데 동백꽃의 꿀을 참 좋아한다고 하니 동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분명 평소 같았다면 소음으로 분류됐을 새소리였지만 거대한 동백림을 걸으며 듣는 새소리는 이상하게도 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옥룡사지를 찾겠다는 내 생각과 고민들이 옳았다. 굳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답이 아닌 내가 몸과 생각이 이끄는 그곳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소박한 여행에서의 깨달음이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 역시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됐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따라가다 보면 이 거대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틀에는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인생의 행복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나의 인생이지만 그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돈상태에 빠지거나 악독하고 잔인한 김 부장, 이 대리에게 그 주인공 자리를 물려주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나 역시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의 주인공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동백,


떠나는 길이 아쉽다.


동백의 진실되고

잔잔한 분위기를 이 곳에 두고

떠나야 하는 게 너무도 아쉽다.


내 마음속에 피어난 동백이

시들지 않게 잘 기억해뒀다


다음 봄이 깨어났을 때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다.


나만의 동백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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