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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조 Aug 16. 2019

그대 오늘 하루가 마음에 드는가?

남이 대신 살아주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

 나는 온전히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최근에 쓴 매거진 글을 다시 읽어보니 스스로의 색깔을 잃은 것만 같았다. 글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데 글자 수만 꾸역꾸역 채워 마무리한 기색이 역력하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발행을 했고 지금도 지우지 않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중간중간 업무를 보면서 글까지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긴 부재가 걱정이 돼서 부랴부랴 썼던 주제의 글이 저 모양이다. 나의 삶도 그렇다. 의식적으로 살지 않으면 늘 후회가 따른다.



 명상을 하면서도 순간을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매일 아침 아기의 꼬물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보채는 아기를 달래며 분유물을 올린다. 9킬로가 넘는 아기를 한 손으로 안고 분유를 타기란 둥근 공 위에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다. 배가 고파서 앙앙 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아침부터 한 손에는 아기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선 묘기를 부린다. 바닥에 앉아 수유를 하고 토닥토닥 트림을 시키며 지난밤은 어땠는지 물어본다. 배부른 아기는 기분이 좋은지 혼자 둬도 울지 않는다. 그 틈에 아침을 욱여넣고 다시 아기 옆으로 돌아와 눕는다. 이것저것 탐색하는 아기 곁에서 필요한 건 없는지 위험한 건 없는지 관찰하면서 머문다.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놀아주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앉는 자리가 눕는 자리가 되고 멀리 치워놓았던 핸드폰을 들고 와 아기 옆에서 작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이 또다시 달려간다. 이곳에 있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급하지도 않은 일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급한 마음이 나를 온전한 나의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삶을 살건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20대 초반의 열정 그리고 공허함

 삶에 대한 숙고 없이 눈 앞의 목적만 좇던 삶

 나 스스로 가치를 폄훼했던 것들에 대한 재고

 지금 나는 또 그 과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하루를 보내면 바쁘고 충실하게 사는 것만 같은데 마무리는 공허하다. 보람차단 느낌도 없고 아쉬움에 잠들기 아쉬워 뒤척인다. 하루를 보내기란 너무나도 쉽다. 삶을 온전히 살기란 어렵다.


 아기가 낮잠에 들고 난 다음 주어지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잘 안 풀리면 괴로워하기보다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가기로 했고 일어나면 다시 아기와 충실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기의 하루가 끝나고 밤잠에 든 이후에 미쳐 하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글도 다시 손보기로 했다.

 아기와 있을 때는 온전히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를 그리고 나의 글에도 나의 일에도 충실한 사람이 되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무엇하나 나의 삶이 아닌 게 없다. 엄마, 대학원생, 요가명상 강사, 친구, 딸, 글 쓰는 것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면서 온전히 순간에 있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의식은 부재한 상태로 익숙한 방식대로 나의 무의식이 처리했다. 눈은 핸드폰에 있으면서 시야를 넓혀 아기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나중에 읽고 정리할 인터넷 상 정보들을 모으고 메모에 옮기는 일들을 했다. 아기가 잠에 들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잠이 쉬이 오지 않고 후회가 남는다면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자.

 스스로 돌아보고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하자.

 그럼 미소를 띠고 숙면에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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