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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조 Sep 29. 2021

둘째를 만나던 날

가장 보편의 출산 경험 에피소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았다.

새로운 출산 경험을 시도해보았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어 또다시 기록으로 남긴다.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자 출산 병원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고 심장소리를 듣고 1,2차 기형아 검진을 마친 후 병원을 옮겼다. 과거와 같이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자연주의 분만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가까운 병원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조산원과 가정분만 또한 고려대상이었을 테지만 근 3년이 지나면서 지인들의 출산 경험을 미루어보건대 병원을 떠난 출산은 옵션에 없었다.

 출산은 정말 가늠할 수 없다.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추천하기 마련이다. 자연주의 분만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환경적 조건이 할 만했고 큰 이슈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경험임을 인지하여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경험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주위 몇몇 지인들이 자연주의 분만 과정에서 힘든 경험을 했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는 이슈를 가지고 살고 있다. 나 또한 생각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브런치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를 처음 만났던 경이로운 순간을 잊지 못하여 또다시 수중분만을 고민해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산은 초산보다 진행이 빠르고 집과 거리를 생각해보았을 때 빠른 대처가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집과 가장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다. 예정일이 추석 연휴 무렵이라 혹시나 혼자 이동해야 할 상황에 처해진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기는 예정일보다 2주 빨리 나오게 되었다.


 막달 무렵 정기 검진에서 출산 방법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다. 담당의 선생님은 첫째를 자연주의 분만으로 낳았다고 하니 올드패션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낳고 싶다면 병원에 아주 늦게 오면 된다는 팁도 주셨다. 낳기 직전까지도 고민이었다. 기록해두었던 생생한 후기를 보면 옵션조차 언급되지 않았을 텐데 망각이란 무섭다.



 출산 이전 이슬이 비친다는 건 중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배운다. 피가 섞인 분홍빛의 투명한 점액 정도로 묘사되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이슬이었나? 싶었던걸 한주 전에 봤었다. 마냥 투명해서 이슬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기는 과거 나갈 것을 미리 예고했다. 둘째 임신은 체력적으로 더 고단했기에 당일 진통도 컨디션 난조라 생각했다.


'가진통은 진진통과 달라요!'


 수업에서 안내하는 멘트를 늘 하고 한 번이었지만 유경험자로써 진통의 느낌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간 잠을 뒤척였던 게 가진통 때문이었음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둘째는 역아 이슈가 있었다. 제왕절개 후 훗배앓이가 걱정되기도 했고 더딘 회복기간도 염려스러웠다. 태아가 바로 자리 잡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밤에 화장실 출입이 잦아졌음에도 출산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임신 증상 중 하나라 여겼고 가끔 오는 통증은 태동이라 생각했다.


 때는 추석 연휴 전 화요일 밤

 첫째는 잠이 들고 여느 때와 같이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최근 잦아진 손발 열감과 요통 때문에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자세를 바꿔보아도 계속 아프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직 일정한 간격으로 느껴지진 않아서 진통 어플을 설치하고 수유 의자에 앉아 주기를 측정하며 기다렸다. 새벽 2시쯤 3분 간격으로 느껴져 부랴부랴 출산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다. 꿈속에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첫째 때와 같이 영상을 찍었다. 


 '지금 베오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이게 마지막 영상이 될까요?'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로 올라갔다. 당직의가 담당의라니! 오늘이 날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첫 번째 내진을 했다. 내진은 선생님의 기술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능숙한 선생님의 솜씨로 별 불편함 없이 지나갔다.


' 3센티 열렸습니다.'


 첫째 때 2센티에서 8,9시간 견뎠던 것을 생각하면 진행이 빠르긴 빨랐다. 


' 무통주사 맞으시겠어요?'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삽관은 해두기로 했다. 무통은 맞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맞고 싶어도 못 맞는다. 새우처럼 구부리고 척추에 관을 삽입했다. 나는 주삿바늘 앞에서 엄살이 심한데 진통보다 무섭다고 요란을 떨었다. 주사를 놓고 또 일정한 진통이 왔다 지나갔다. 태동 검사기를 달고 심박을 측정하느라 자세가 불편했다. 병원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출산이 이렇다. 내가 배운 출산의 진행방식은 엄마가 움직이고 걷고 서서 허리도 풀고 해야 아기가 수월하게 내려오는데 아기의 위치와 상태를 관찰한다고 엄마는 누워서 옴짝달싹 못한다. 그래도 견딜만했다. 시계도 보고 남편이랑 수다도 떨고 인터넷 웹서핑을 하며 진통 시간을 보냈다. 첫째의 진통과정에는 견뎠다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 진통은 시간을 보냈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진통의 세기가 5를 넘어가면서 구토 증상이 시동을 걸었다. 자연주의 분만 과정에서 진통 중 낳기 직전까지 토를 했었다. 신경의 어느 부위가 눌려서인지 모르겠지만 토할 것도 없는데 쏟아내다 보니 식도벽이 모두 상했던 기억이 났다. 너무 고역이었고 힘들었다. 이후 회복기까지도 상당 기간이 필요했다. 진통이 이어지다 보니 강도가 높아졌을 때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그리고 미래의 나가 너무 힘들 거라고 경고도 했었는데! 지인은 일반 분만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기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번이나 참고 무통 맞는 시간을 지나 병원에 갔다고 했다. 새삼 그 친구가 존경스러워졌다. 나는 슈퍼 엄살쟁이라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야깃거리는 한번 경험한 것으로 족했다.


' 무통 맞겠습니다!'


 관에 무통약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시원한 액체가 싸르르 몸에 퍼졌다. '무통 부작용으로 구토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 무통 왜 맞은 거지?


 다행히 구토 증상은 없었다. 진통 그래프는 일정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고 발끝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 골반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이게 아쉬운 부분, 출산의 과정이 느껴지지 않으니 아기가 얼마나 힘든지 심박측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진행이 더디자 촉진제 이야기를 꺼냈다. 무통을 맞으면 촉진제를 안 쓸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담당의 선생님이 곧 당직이 끝나고 외래진료가 있으시다 보니 다른 분이 받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디든 병원에서 하는 분만은 병원 스케줄에 맞춰 진행된다. 먼저 양수를 터트리고 이후 상황에 따라 촉진제도 맞기로 했다. 누워있으니 진행이 더딘가 싶었다. 끝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촉진제를 맞고 잠시 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아기가 나올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촉진제 맞은 지 30분에서 1시간 남짓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힘을 주라 하는데 하나도 안 힘들고 '이렇게 힘주는 거 맞나요?' 하면서 밀어냈다. 너무 쑥 밀어내면 내 몸이 힘드니 천천히 은근하게 밀어내라는 요구에 맞춰 힘을 주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프고 하나도 안 힘들었다. 그렇게 10번의 작고 큰 힘주기를 하고 아기는 세상에 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긴 시간 안고 있을 수 없었다.


 무통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지금 출산 20여 일이 흘러 골반과 회음부 주위에 큰 이슈가 없어서 다행이지 감각이 없어서 어떤 난리가 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연주의 분만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언정 아기와 함께 하는 진행과정이 온전히 느껴졌다. 골반에 아기가 내려와 끼어있는 느낌도 들었고 쑤욱 빠져나오는 감각도 느껴졌다. 무통을 맞은 후 분만은 그렇지 않다. 처치를 마치고 아기를 만났는데 웬 거봉이 내 품에 있었다. 피부가 눈과 코를 제외하고는 보라색이었다. 처음에는 점인 줄 알고 걱정했다. 알고 보니 얼굴 전체에 멍이 들어 나온 거였다. 무리하게 내려오다 보니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밀려 나와 얼굴에 멍이 든 것 같았다. 반상출혈이었다.


 아기는 지쳐서 잘 빨지 못했다. 얼굴 전체가 멍이니 먹기 힘들었을 것 같다. 첫째가 잘근잘근 씹어 고통을 주었던 것과 달리 둘째는 물고 두어 번 아주 약한 힘으로 빨다 잠이 들었다. 과거 교육과정에서는 무통의 약품 때문에 아기가 엄마의 젖을 잘 찾아가지 못한다는 자료를 본 적 있었다. 둘째는 약효 때문인지 출산 과정의 지침 때문인지 계속 힘이 없었고 울지 않았다. 그리고 황달 이슈도 있었다. 모유수유를 하다 보면 황달 수치가 올라가는 건 알고 있었는데 태어나서도 바로 문제가 되기도 하더라. 그래서 아기는 입원을 하고 나는 조리원으로 입소했다.


 둘째는 정말 다른 경험을 했다. 출산 방법도 달랐지만 아기의 성향도 다르다. 

 이후 자라나는 과정은 더욱 다르겠지.


 둘째는 사랑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첫째는 나의 몸이 상해 가고 체력도 쉬이 지쳤다. 지금도 체력이 좋진 않지만 많은 가족들의 도움과 아이템을 활용하여 육아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뉘어 자는 거에 집착했던 내가 아기를 가끔 안아서 토닥여주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신생아 기간이 너무 더디고 통잠의 시작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둘째가 너무 귀엽고 첫째는 애틋하다. 이제 이 두 인격 사이에 발란스 게임이 시작된다. 어떤 새로운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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