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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지 Dec 08. 2021

별모양, 동대문우체국 사서함 62호, 그리고 강은지

동대문우체국 사서함 62호 "안녕" D-day 19, 18, 17 ...

별모양 × 사서함  


<별모양>은 2009년 광주시립미술관 양산동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당시 2009년 6월 2일자로 전자상거래업으로 등록한 상호이다. 이후 2019년 9월 9일자로 폐업과 동시에 다시 동일한 상호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2021년 현재 사업자등록증의 업종은 전자상거래업, 시각디자인업, 미술가이다. 그리고 <동대문우체국 사서함 62호>은 2014년 2월 14일자에 개설했다. 







아티스트

왜 별모양을 하고 사서함을 하나


2001년 대진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졸업, 대학교에서 다양한 미술 재료를 공부할 수 있었다. 유화나 아크릴화 외 조소, 사진판화, 프레스코 벽화를 비롯해 다른 학과의 과목인 무대 디자인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토대로부터 재료나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은 채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어서 2007년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 회화과 서양화전공 졸업, 작품을 벽에 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시간이 찾아 온다. 그리고 대학원은 작은 생채기 하나로 생명까지 위태로운 지경으로 이끄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작품의 개성을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으나 불필요한 고민이 많았던 탓이다. 바로 긁어 부스럼 만들 듯 말이다. 


2009년 돌연 광주시립미술관 레지던시에 참여한다. 2009년 3월 1일부터 2010년 2월 28일까지, 1년간 양산동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다. 광주에는 연고가 없고, 다만 대학교 때부터 오직 편지로 음악 이야기를 수시로 주고받던 친구가 있었다. 음악 외 갈등으로 인한 고민들이 있었고, 아이디어에 초점을 둔 작품 세계로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그렇게 대학원 내내 시름한 결과물로 한 전시가 석사청구전 <두 사람>이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2006년, 동대문구 재개발 사업으로 태어나서부터 살던 집에서 내몰린다. 커다란 박스들을 들고 온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물건들을 욱여넣고, 그 박스와 함께 한 가족을 밖으로 던진다. 사회적인 이슈가 개인의 문제로 다가올 때, 처절하게 투쟁하거나 참 무기력해진다. 전자는 우리 어머니이고, 후자는 나다. 이 시기에 어머니의 강단으로 온 가족이 난생처음 유럽 여행을 떠난다. 곧이어 독일 수녀원, 하루는 수녀인 이모가 일하는 재봉실에 수납된 실들을 정리한다. 그런 다음 객실에서 작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 정원에서 작은 꽃들이 무수히 맺힌 이름 모르는 풀꽃 무리를 보았는데, 허리를 넘기는 제법 큰 식물로 몽환적이었다. 먼저, 갖고 있던 색연필로 식물의 실루엣을 그린 후에 배경을 전부 칠한다. 그리고 재봉실에서 가져온 색실로 꽃을 수놓아 그림을 완성한다. 여행이 끝난 뒤에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동일한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나갔다. 2013년에 전시명이기도 한 <꽃> 간판을 걸고, 작은 카페의 한쪽 벽면에서 전시한다. 선인장과 다육식물 위주로 종이 위에 주로 색연필을 사용하고, 식물의 털이나 가시들은 실로 표현한 소품전이었다. 그리고 수녀원 객실에서 제작한 또 다른 작품이 <yours>이다. 투명한 비닐 가운데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내어 바늘 이미지를 구성한 작품이다. 


다시 2009년, 홍대 인근 상상마당 갤러리의 2층으로 오르는 외부 계단이 시작되는 쪽에 우연히 발견한 물건의 주인을 찾는다는 광고지를 부착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작품을 건네면서 다른 사람과 1:1로 대화하기를 시도한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된 작품 <yours>를 건네고, 나의 것이 아니기에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당시 갤러리의 광고 허락, 광주시립미술관으로부터 광고지 제작 지원을 받았다. 


또 2009년 12월과 2010년 1월에 걸쳐 난지시립미술관과 입주작가 교류전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했고, 작품 한 점을 전시한다. <장미 화분과 편지> 그림을 그리고, 손편지 두 통과 함께 전시했다. 편지 봉투 겉면에는 '가족에게', 또 '10분 이상 그림을 관람하신 분에게'라고 써두었다. 전시 오픈일이 다가오는 무렵에 심각하진 않았으나 교통사고로 다친 상태였기에 가족을 초대할 수 없었다. 결국 가족에게 쓴 편지는 개봉되지 않았다. 나머지 편지에는 관람객 앞으로 그림에 관한 이야기와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는데, 입주 기간이 끝나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종종 그림이 언급된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관람객으로부터 그림이 언급된 장문의 편지도 한 통 받았다. 그리고 2010년 2월 광주에서 개인전 <우연히 발견한 물건의 주인을 찾습니다>을 할 때, 교류전의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광주시립미술관으로부터 무상 임대 서류를 받아 입주한 스튜디오 주소로 전자상거래업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어온 사업자등록번호를 2019년에 편리하게 버렸다. 친구의 의뢰로 인쇄물을 제작하면서 행정적인 처리가 필요한 이유였다. 고민 없이 지속한 <별모양>의 의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정해진 주소를 갖고자 동대문우체국에 사서함을 개설한다. 재개발 이전에 집이 있던 동네, 용두동 내에서 이곳저곳으로 수차례 이사한다. 그 때문에 사서함을 이용하기로 한다. <별모양>과 <동대문우체국 사서함 62호>는 둘다 이야기를 주고받을 가능성을 열어둔 창구이다. 그럼에도 온라인 스토어에 방문한 사람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일 수 있고, 따라서 그 사람이 선택한 상품과 함께 무엇이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반면 사서함은 애초에 우편물을 받기 위한 수단인 점에서 조금 다르다. 사서함에는 사람들이 연락해 오기를 항상 기다린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3년 만에 작업실로 얻었던 문간방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온다. 작업실에 있기보다 기타를 배우고 싶었고, 보증금으로 새 기타를 샀다. 대학생이던 내내 영국 밴드의 음악만을 즐겼고, 대학원생이던 때는 처음 기타를 갖는다. 그리고 기타를 좋아한 순간부터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늘어나는데,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긴 여정이 시작되었고, 그 끝은 아직 모른다. 2015년 개인전 <너와 나 사이의 한마디 말>로 여행 계획을 발표한 후, 계획대로 나아가 지지 않았다. 어쩌면 목적지까지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걷고 있는 중이다. 잠시라도 동행할 사람을 만난다면, 어디든 곧바로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대하던 곳이 아니더라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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