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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l 31. 2023

여행은 자꾸 길을 잃어버리는 것(2)

파리에서의 9박을 마치고 코펜하겐으로 출발하는 아침이었다. 어제 호텔로비에 부탁한 택시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친절하게 캐리어를 실어주었다. 익숙해진 호텔 주변을 지나며 그동안의 기억들이 센 강과 함께 흘러갔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나는 만났을까?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꿈꾸었던 나의 삶의 한 조각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는 여행을 통해 만나고 싶었다.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면 그것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센 강은 모든 그리움이 흘러 들어가는 길목이다. 매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걸음은 언제나 센 강에 멈춰있었다. 강가에 머물러 앉아 있는 사람들 앞을 강물은 한시도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 무엇도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없었다. 저항할 수 없이 밀려오는 저 물결은 언젠가는 내가 꼭 마주해야 했던 내 안의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 물결과 함께 흘러가고 싶었다. 그러면 영원히 현재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걷고 또 걸었던 센 강변 ©boah


나는 꿈에 다가갔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고 있는 그것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는 센 강의 한 카페에 앉았다. 에스프레소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내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불행해질까? 나는 잠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어쩌면 내가 벗어나야 해야 내 안의 어떤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바란 건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것은 실체를 드러내다가도 이내 숨어버렸다. 강은 흘러가고 나는 남을 것이다. 결국 흘러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 물결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때론 천천히 때론 세차게 나를 휘몰아치는 물살에 대항하기도 하고 휩쓸리기도 하면서 온전히 물살을 겪어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처럼 너무나 쓰고 또 달콤했다.   

센 강변의 카페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boah


시간이 꽤 지나 파리공항에 거의 다다를 무렵 돌연 택시기사가 다급한 통화를 시작했다. 그 시기에 파리는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시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안 조용했던 시위가 마지막날 시작되었는데 그 여파로 공항 제1 터미널로 빠지는 도로가 통제되었다. 택시 기사는 나를 고속도로 한 길가에 내리게 했다. 나의 손에는 카드 단말기가 쥐어졌고, 택시비 결재를 마치자 캐리어와 나를 덩그러니 남겨 놓고 택시 기사는 떠났다.


 '저기요......'   

순식간에 대로변에 남겨진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고속도로변에 즐비한 차들, 분명 몇 분 전에 나처럼 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았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도로는 정체되어 차량이 도로에 가득한데 그 길가에 나 혼자 정처 없이 서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저 앞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경찰은 내가 돌아온 길을 가리키며 되돌아가 길을 따라 내려가면 트램을 타고 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경찰의 설명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도대체 어느 길을 따라가야 트램을 탈 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또 한참을 길 위에 서있었다. 경찰에게 다시 다가갔다.  


"나는 당신이 알려준 길을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터미널을 향해 걸어가겠어요."


나는 경찰을 지나 앞으로 걷다가 가방을 들어, 있는 힘을 다해 계단을 내려왔다. 저 멀리 제1터미널이 보인다. 그냥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시간은 걸리고 힘은 들어도 터미널로 가는 길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조금 전만 해도 길 한가운데서 서서 막막하기 그지없었는데,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이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낯선 길 위에서 캐리어를 끌었던 파리에서의 나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예상하지도 바랬던 모습도 아니었지만 내가 사진첩에서 자주 꺼내보는 모습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꼭 내가 계획한 길을 따라가는 건 아니다. 길을 잃었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없었을 때, 도무지 마음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혼돈이 왔을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걷는 길이 내 길이 된다. 길을 잃어버려야 우리는 비로소 길을 찾게 된다.


제 1 터미널을 향해서 걸어간 길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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