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를 보고 있었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그다음 날, 나는 뉘하운 수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운하 주변에는 배를 타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길가에 서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부둣가에 걸터앉은 사람들과 흔들리는 관광선에 몸을 실은 사람들, 그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투명한 하늘에는 생기가 넘쳤다. 이 낯선 도시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서 매우 친밀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나의 눈을 열고 이 도시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주 작은 여행자로서 아주 잠시 이 도시에 머물다가 떠나갈 것이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머물렀던 공간 속에 기억 되기를 바랐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봄으로 관련되는 대상과 주체로서의 모습으로.
뉘하운에서 숙소로 되돌아갈 때 나는 왔던 길을 되짚지 않고 다른 경로를 택했다. 수로 저 멀리 검은색의 건물이 보였다. 구글맵을 켜서 어떤 건물인지 알아보니 꼭 와보고 싶었던 왕립도서관이었다. 덴마크 왕립도서관은 1906년 한스 외르겐 홀름에 의해 건축된 이후 1968년 한 차례 확장하였고 1999년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슈미트 해머 라센 (Schmidt Hammer Lassen)사에 의해 신관이 증축되었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강렬한 이 도서관은 검은색의 화강암으로 마감이 되어있었는데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리는 모습 때문에 블랙 다이아몬드가 별칭이 되었다. 이 도서관은 수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고 가로로 긴 형태여서 내가 미지지로 보았던 도서관의 모습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기 어려웠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로비를 지나자 거대한 보이드(VOID) 공간이 드러났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도록 자연스럽게 동선이 유도되었다. 나는 보이드 공간의 가장 위까지 올라갔다. 내부 로비는 보이드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 놓은 듯하다. 보이드 공간의 물결치는 난간은 바로 창 밖으로 흘러가는 물결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곳에 서면, 전면이 커튼월로 만들어져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외부로 유도한다.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 느껴졌던 도서관의 폐쇄적인 느낌은 도서관의 내부로 들어서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도서관은 전면창이라는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도서관의 눈을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서클 브리지(Circle Bridge)를 둘러보았다. 덴마크어로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이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자전거 다리라는 의미로 코펜하겐 항구 주변 지역을 연결한다. 수로 위에 떠있는 이 다리는 형태적으로는 다섯 개의 원형이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모습을 담기 위해 브리지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브리지의 전체적인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 브리지를 자세히 담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브리지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기 어려웠다. 나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브리지 안에서는 결코 브리지를 찍을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클 브리지에 서서 수로 맞을 편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건너편에 얼마 전에 찾아갔었던 왕립도서관이 보였다. 내가 정말 담고 싶었던 그 모습으로 블랙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이렇게 우연히 나의 눈에 담게 되었다. 나는 반가워서 도서관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순간 나는 왕립도서관의 눈으로 바라봤을 서클 브리지를 떠올렸다. 사진첩을 뒤져 왕립도서관의 보이드 난간에서 서서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사진에는 도서관의 전면창 너머, 수로 저편에 서클 브리지가 담겨 있었다. 다섯 개의 원형이 연결되어 있는 내가 보고 싶었던 그 모습이었다.
어떤 것에 너무 몰입되어 있거나 함몰되어 있으면 그 대상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 대상과 관계하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대상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그 대상을 온전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온전히 비춰주는 거울 같은 대상,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깨닫게 해주는 대상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본다는 건, 잘 계획된 건축물을 만나는 것처럼 늘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를 본다는 건, 언제나 극복돼야 할 나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힘들어서 그 대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나도 그 대상도 사라지고 모든 건 의미를 잃는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내가 바라볼 누군가를 찾았다는 건 서로를 온전히 비춰줄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건 나 자신을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나를 비춰주고 그의 모습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일이다.
니체는 인간을 극복되어야 할 그 무어라고 하였다. 나를 비춰줄 친구를 만나는 걸 부디 겁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오히려 축복이었음을 먼 훗날 후회로 회상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