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도 아름다울 수 있다.
얼마 전 새로 이사한 스튜디오에 친구가 놀러 왔다. 선물을 사 오지 말라고 극구 이야기했건만 친구는 작은 선물이라며 와인과 함께 한눈에 봐도 정성껏 포장한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뜯었다.
"예전에 사놓은 건데..."
아마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주려고 미리 사놓은 물건이었나 보다. 나도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사두었다가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선물을 하곤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언제나 아무 때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지금 아니면 살 수 없는 것, 나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 아니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작은 빗자루"였다.
아주 옛 날 한옥에 살던 사람들이 썼을 법한 빗자루. 천연 수수로 만들어진 이 빗자루에서 누군가가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만지고 다듬어서 만든 흔적이 보인다. 손잡이 부분을 진청의 두꺼운 색실을 감아 만들었는데 솜씨가 정교하고 깔끔하다. 본체는 거친 수수나무를 유선형으로 잘 손질해서 날렵한 곡선을 그려내었다. 나는 이 선물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먼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이라 보는 순간 "와" 하는 놀라움이 일었고, 빗자루라는 공예품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사물은 분명히 나의 스튜디오를 특별하게 할 것이다. 나는 예전에 할머니집에 놀러 갔을 때 빗자루가 벽에 걸려 있던 것이 떠올랐다. 나도 적당히 스튜디오 한편 벽에 빗자루를 걸어보았다. 빗자루 아래 비스듬히 놓인 액자와 바로 옆 조명은 원래 알던 친구인양 서로 잘 어우러졌다.
"디자인이란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뛰어난 인식이나 발견은 생명을 지니고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긍지를 갖게 해 준다."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중에서)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한다. 우리가 박물관을 찾아가서 옛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과거의 삶을 인식하게 위해서이다. 기계화와 대량생산 이전의 산업은 수공예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섬세한 손을 거쳐 만들어진 생활용품들은 개인의 부와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과거의 귀족들과 지배자들의 사치와 낭비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관습과 같은 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디자인은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기계화와 대량생산이 산업화와 더불어 대중화되면서 디자인의 평등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인간의 노동력은 값싼 부속품처럼 전락하게 되고 그 덕에 제품의 단가는 떨어지게 되었다. 수공예에서 다루어졌던 양식적이고 장식적인 디자인이 배제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대중은 저렴한 가격의 흐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모던화된 디자인이 유행을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평준화되었고 기계에 노동을 빼앗긴 인간의 작업기술은 점점 더 단순화되고 가치가 저하되었다. 모던디자인은 디자인이 고위층의 전유물이 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표방하였지만 산업혁명은 인간을 기계의 부속물처럼 전락시키고 거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장인, 수공예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일종의 움직임이 있었고 대량생산으로 인한 기계미학에 반대하는 수공예 운동이 전개되는 등 디자인은 사회의 변화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하였다.
인간이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가는 한, 디자인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가지고 싶은 욕망을 추구할 것이고 디자인은 그 욕망을 부추기고 생산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순수 예술과 달리 우리의 삶의 환경을 개선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라 켄야가 디자인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면에서 지극히 당연하다. 디자이너의 세상을 향한 인식은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을 통해 드러난다. 이것이 디자이너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고 그에 반응하는 소비자를 통해 디자이너의 생명력이 이어지게 된다. 마음에 드는 쏙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평소 디자인의 가치나 취향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자를 사야 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오래된 빈티지에 대한 가치에 관심이 있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가구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통짜맞춤 방식의 의자는 어떨까? 디자인 편집샵에서 수입하고 있는 의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한국 가구 브랜드에서 제작하는 의자들의 디자인 경향은 어떠하고 금액은 어느 정도 인가? 요즘 유행하는 미드센츄리 의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지금 집에서 소유하고 있는 가구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내가 전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나의 공간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디자인에 정답은 없기에 디자인된 제품을 구매할 때도 정답은 없다. 다만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나의 가치관 또는 취향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잘 모르겠다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생각해 보면 좋다. 만약 이사 간 친구 사무실에 초대를 받았다면 무엇을 선물로 준비하겠는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