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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Oct 10. 2023

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

 샌프란시스코베이에서 바라본 도시 ©boah


나는 얼마 전에 샌프란시코에 다녀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직장을 얻어 그곳에 살고 있는 딸과 며칠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딸아이의 집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데 조금 걸어 나가면 바닷가이고 비교적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이다. 덕분에 월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월급 받아서 세금 내고 월세내고 생활비 쓰면 남는 게 없다고 툴툴대는 엄살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월세가 비싸도 안전한 지역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치안에 취약한 지역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20-30분 간격으로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도보로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여행지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다닐 수 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도 맘 편하게 발을 내딛을 수 있어야 그 도시와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을 만날 때도 너무 조심스러우면 다가가기 어려워지듯 어느 정도의 경계 안에서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더 빨리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친해지면 서로의 공간에 상대를 들인다.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자신의 일상의 보여주는 행위이다. 예전에는 더더욱 그랬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반상회라는 것이 있어서 이웃이 모여 다과를 함께 하고 아파트단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논의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웃의 이름은 잊어버려도 그 사람이 몇 호에 살았는지는 기억한다.


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와서 어딘가를 갈 때는 그곳이 위험한지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샌프란 시스코에서는 어딘가로 이동을 해야 할마다 그 지역이 우범지역인지 아닌지를 늘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제공하는 웹페이지(www.crimemapping.com/map/ca/sanfrancisco)에 들어가면 그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의 횟수와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 홈리스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그들을 돕기 위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것이 홈리스를 더욱 이 지역으로 몰려들게 한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시는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거리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하려고 하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늘어나는 범죄를 다 처리하기에는 이미 역부족이 된 것 같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 LA 산타모니카 해변에 잠시 머물렀을 때도 호텔 주변에 늘 자리를 잡고 있는 홈리스들 때문에 저녁 7시 정도에도 거리를 걷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찾아 이 도시들을 떠나고 있고 개개인들이 땅을 사서 아예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들도 들려온다. 테크 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이 지역은 특히 코로나 이후 재택이 보편화되면서 사업장의 수를 줄여가고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런 기업들에 기대어 영업을 하는 소상공인들도 문을 닫고 있어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2014년 통과된 주민발의안 47은 950달러 이하의 절도, 특정 마약의 소량 소지와 사용은 동일 범죄를 3회 저지르더라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집행유예만 선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백화점에 떼강도가 들어와도 속수무책이며 재범율도 상당히 높다고 한다. 중범자들을 처리하기에도 부족한 인력과 예산은 이같이 경범죄들을 방치하고 양산하여 오히려 이 도시를 더 혼란하게 하였다. 절도 금액을 950달러에서 400달러로 내리는 법안이 검토 중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유태인 현대미술관에 다녀올게”

나는 미술관 근처 카페에서 작업을 좀 하다가 관람을 하려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걸어서 30분 거리지만 여유 있는 아침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버를 탔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되는데 우버기사가 길을 계속 벗어났다. 그리고는 엉뚱한 곳에서 내리라고 하였다. 나는 맵을 가리키며 목적지까지 가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너무나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구글맵을 켰다. 경로를 따라 걸었다. 길 한가운데 엉덩이를 드러내고 자고 있는 어떤 사람이 보였고 조금 멀리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뭔가 안전하지 않은 거리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글맵은 우범지역을 제외하지 않고 길을 보여주었다. 나는 천천히 며칠 전 딸아이와 지도에서 확인했던 안전한 거리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5분 정도 돌아가면 미술관으로 가는 안전한 큰 대로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반토막난 시간이지만 나는 무사히 카페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나는 미술관 관람을 하고 거기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성마리아 성당을 방문하고 또 거기서 그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카페에서 작업을 했다. 모두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고, 걸으면서 거리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스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나는 길을 걷다가 현지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서 대화를 시도하곤 했다. 사실은 잘 아는 길도 웬만하면 주변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묻곤 했다. 그러면서 나를 여행객이라고 소개하고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여행이 길어지면 마음이 외로워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럴 때는 길을 묻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친절에 과도하게 감사의 표현을 하기도 했다. 팔로 막 하트를 그리기도 하고 엄지척을 수 없이 날리면서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나의 모습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애교를 넘어 살짝 주책맞은 아줌마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잠깐 만나고 스쳐갈 사람들이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이런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었다. 도시를 만난다는 건, 그 장소를 방문한다는 의미와 함께 그곳의 사람을 만나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주 잠깐의 만남이라고 해도 꽤 오랫동안 기억나는 대화도, 표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나에게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사는 저 수많은 사람들조차 모두 개인, 개인으로 흩어져 파편화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이질화되어 반감만이 쌓여가는, 이제는 불안감 속에서 다른 이의 고통을 돌아볼 여유가 사라진 차갑고 메마른 현실이 담담한 도시였다.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지만 양극화된 이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 극명하고 지배적이었다.


Tony Bennette의 노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가 예전처럼 낭만 가득하게 들려오길 바라는 건 나의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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