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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Oct 11. 2023

저 벽은 왜 기울어졌을까?

유태인 현대미술관에서의 오후

붉은 벽돌의 발전소 건물과 증축된 검푸른 패널의 수정체 건물 ©boah



샌프란시스코의 미술관 하면 누구나 현대미술관(SF MOMA)을 떠올린다. 이곳을 방문하였다면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태인 현대미술관(The Contemporary Jewish Museum)의 방문도 권하고 싶다. 이 건물은 원래 발전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하여 2008년 증축, 완공된 것이다.


꼭 보고 싶었던 공간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의 감정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된다. 지난봄 파리에 있는 케브랭리 박물관을 찾아갔을 때였다. 이곳으로의 진입은 에펠탑 방면에서 또는 센 강 방면에서 모두 가능한데, 누군가 나에게 길을 묻는다면 나는 센 강 방면에서의 접근을 권하고 싶다. 센 강변 쪽에서 진입하면 무심히 늘어선 유리벽을 지나 생각지도 못한 초록의 야생정원을 지나게 된다. 녹색의 푸르름은 건축물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고 이리로 저리로 동선의 흐름을 이어간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감각을 나무, 풀, 꽃, 바람, 햇빛, 공기에 충분히 노출시킨다. 천천히 마음이 열리고 목적하는 대상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마치 건축가가 서두르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대로 그려놓은 듯하였다. 나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 주변을 맴돌며 유난히 따뜻했던 그날의 햇살을 받아들였다.


유태인 현대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은 우버기사의 돌발 행동 (나를 엉뚱한 곳에 내려놓음)으로 살짝 험난했지만 그 덕분에 거리를 걸으며 미술관 주변의 환경을 탐색할 수 있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진입하는 3번가 방향이 아닌 마켓 스트리트 쪽에서 다가갔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방향에서 건물을 마주하면 오래된 발전소 건물을 먼저 만나고 이 건물 끝에 증축되어 이어진 새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형태와 재료의 만남은 언제나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미술관 앞마당에 조성된 물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저 앞에 보이는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검은색의 거대한 덩어리가 너무나 궁금해서 빨리 다가가고 싶었지만 한눈에 모든 것을 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좀 더 마당에 머무르면서 나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건물의 형태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을 관찰하였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해체주의적 개념을 적용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건축 이론가로서의 삶을 지속했던 그는 1989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프랭크 게리, 피터 아이젠만 등과 함께 해체주의 건축전시를 열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99년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에 이어 덴마크와 샌프란시스코에도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하게 되었다. 1946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리베스킨트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11살 때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에 탁월했는데 미국-이스라엘 문화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귀화한 리베스킨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존재론적 고민을 담았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해체론적 시각은 우리가 속한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수히 변화하고 분열하고 구분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지금 우리 앞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통합하여 보존하고자 하였다. 유태인 현대미술관에서 보이는 과거의 흔적과 증축된 현재의 통합은 그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삶은 획일적이지 않으며 저마다의 이야기와 역사가 살아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보았고 건축도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다. 그는 모든 시간과 공간은 불명확하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안에 혼란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근대 이후의 건축이 주장하는 절대적인 기준과 틀이 개인의 주관과 상대성, 다양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당시 모더니즘은 봉건 질서를 비판하고 세상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재건하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탈개성화되는 양상으로 흘렀다. 그의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사선(diagonal line)은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비판적 사고를 표현하는 형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공간 속에서의 사선은 일반적인 수직면에 숨어있는 직선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주며 사선이 포함되어 있는 면 역시 공간 속에서 자신의 부재를 일깨우며 살아난다. 공간 곳곳에 드러나는 사선은 벽을 구성하고 축을 이루고자 하며 방향성과 운동성을 가지고 동선을 유도하고 시선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공간 속을 또는 공간의 주변의 움직이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시간에 흐름에 따른 지속적인 변화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사선과 더불어 그가 사랑한 형태인 수정(crystal)체는 사선이 입체적인 형태를 띠면서 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유태인 현대미술관의 증축 부분에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오래된 발전소 건물의 벽돌의 외관을 회복시키고 검푸른 금속 패널로 마감한 수정모양의 형태를 접목시킴으로써 시간을 단절하지 않고 현재에서 그다음으로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었다.


이 날 전시는 뉴욕에 기반을 둔 미카 로텐버그(Mika Rottenberg)의 비디오 설치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물질, 에너지, 인간 노동의 착취가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서 증가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몰입감 있게 표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에 몰입하였다. 아주 작은 미술관에서 작은 규모의 전시를 관람하였지만 그 어느 미술관에서보다 긴 호흡으로 머물렀던 가을의 오후였다.



검푸른 패널로 마감되고 사선이 강조된 증축된 부분의 외관 ©boah
 미술관의 내부에서도 사선으로 강조된 벽면과 천정, 창문이 보인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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