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아 Jul 09. 2024

디자인에 담겨야 할 것들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리나 까벨리에리(Lina Cavalieri)의 얼굴을 본 것은 수년 전  리즈디(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여자 화장실에서였다. 나는 신비로운 그녀의 얼굴에 매료되었고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벽면 가득 채워진 그녀의 얼굴에서 디자인이란 풍부한 감정의 공유와 다채로운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나는 밀라노에 머물면서 이탈리아 디자인이 진화되어 온 과정을 이해하였고 특별히 몇몇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가 추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디자인이 무엇인가의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 나는 “인간은 욕망의 존재”라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미개했던 원시부족조차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방법으로 자신을 치장하였다. 남과 다른 자신 안에 내재한 나를 드러나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과일을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신을 거역하고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 과일은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불과 같은 것이었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생존의 지혜를 전달한 순간 갈등은 시작되었고 그에 따르는 고통이 뒤따르게 되었다. 인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 순진함보다 위험을 무릎 쓰고서 라도 자신 안에서 용솟음치는 욕망을 가두지 못하는 존재였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오랜 시간 인간의 내면 가운데 억눌려 있기도 했지만 끝내 르네상스라는 꽃으로 불타올랐다.  그것은 지혜라는 이름으로 문화를 통해 아름답게 꽃 피워졌다. 동시에 인간의 욕망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곤고히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인간은 의자 하나에도 자신의 권력을 담았다. 신분이 높을수록 더 비싼 재료로 더 화려한 장식을 넣었다. 인간은 자신이 입는 옷에, 가구에 집에 그것들을 드러냈고 수많은 장인들이 그 일에 동원되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는데 드레스를 이용하였다. 당시 힘이 약했던 여왕은 왕궁으로 귀족을 불러들여 연회를 열였다. 그때마다 왕비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 귀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귀족들은 왕비 못지않게 화려한 드레스를 만들어 입기에 혈안이 되었다. 드레스를 만들기 위한 패브릭과 장신구의 구매가 늘어날수록 왕족은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게 되어 더 왕권을 견고하게 할 수 있었다. 귀족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의미 없는 소비에 열중하였고 그로 인해 점점 자신들이 견제 대상인 왕권이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소비와 사치를 즐기는 것이 가진 자들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상류층의 관습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귀족은 왕족을 일반 백성은 귀족을 따라가려는 연쇄현상을 만들어 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최하층의 노동은 생존을 넘어서 소비를 위한 노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디자인은 과소비를 부추기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같이 디자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변화되어 갔다.  산업화로 인한 인간소외, 몰개성화, 품질저하 및 부의 양극화 현상은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수공예 운동으로 이어져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노동하는 인간이 느끼는 기쁨의 가치를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정직한 노동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으나 오히려 상류층의 취향에 맞는 제한적인 디자인과 값싼 노동력의 사용을 배제하지 못한 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처절하게 맛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지게 되었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 완전한 것을 꿈꾸었다. 그것은 과학에 대한 맹종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나 과학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의 지성에 의지한다는 모순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오직 예술과 산업이라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면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Artemide

밀라노에 오기 전 나는 조명디자인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 가지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보았다. 나는 그 과정에서 조명을 제조하는 업체와 여러 차례 협의하는 과정을 경험하였다.  한국의 경우, 을지로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명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몰려 발전되어 왔지만 최근 중국공장의 저렴한 제작단가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나와 거래를 했던 조명공장 사장님도 중국제품이 최근 워낙 다양해지고 저렴한 인건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국산제작으로는 절대로 가격을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조명을 디자인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나는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Berganti)의 저서, Design Driven by Innovation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탈리아 조명회사, 아르떼 미데에 주목하였다. 아르떼미데에는 회사 내에 디자이너가 없다. 이 회사는 유명한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최상의 제품제조에 힘쓰고 있다. 디자이너는 제품의 제조 및 유통보다는(물론 그것을 고려하는 디자인일 수밖에 없겠지만) 디자인 자체, 디자이너들이 전달하려는 의미에 집중할 수 있었다. Artemid는 고객의 요구나 시장을 고려하는 것보다 고객들에게 제안할 무언가를 만들어 시장을 이끌어간다. 그 시작은 메타모르포시의 출시로 가시화되었는데 이는 사람들을 “물건”을 구매하는 것보다 “의미”를 구매한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이다. 이 조명은 사용자의 감정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색상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인간중심의 조명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이는 같은 하나의 조명이 각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조명으로 개인화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실용성, 목적성과 함께 심오한 감정적, 심리적,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물건을 구매한다” (Design driven by Innovation 중에서, Roberto Berganti 저.)  나는 여기에서 대량 생산과 장인정신의 공존을 엿보았다. 이것이 이탈리아의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에도 을지로에서 뼈가 굳은 장인들과 제품을 만들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이들은 밀라노 디자인 페어와 같은 국제디자인 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디자인을 알리며 오리지낼리티와 제품의 질로 승부를 하고 있다. 물론 아주 옛 날처럼 스스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오래된 방식은 아니지만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을 극복하면서도 그 이점을 수용하는 태도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밀라노 아르떼미데 매장 ©boah




Fornasetti


서두에서 언급한 Fornasetti는 1913년에 출생한 Piero Fornasetti에 의해 설립되었다. 350 가지가 넘는 Lina Cavalieri의 변주 시리즈, 주제와 변형(Tema e Variazioni)으로 유명한 이 디자인회사는 제품의 제작이 도장, 옻칠마감, 실크스크린등 과거방식 그대로 숙련된 장신이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피에로 포르나세티(Fornasetti)와 리나 까발리에리(Lina Cabellieri)는 서로 닮아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내재된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떠났고 늘 변화하려고 했으며 그녀의 그러한 의지는 사회의 구조나 관습, 편견에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생동안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리나의 모습은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작품 속에서 끝없이 변주되며 재현되었다. 같은 사물도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상상력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늘 새롭게 구현되었다. 그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이나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의 세계와의 교묘한 접점에서 자유롭게 존재하였고 그 경계지대에는 늘 새로움이 가득했다. 현실과 상상의 두 세계를 넘나들며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는 과히 20세기 르네상스맨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그의 아들 바나바 포르세나티(Barnaba Fornaseti)는 아버지가 수집한 아카이브를 지켜내면서 소규모의 제작회사와 협업하여 수공예 작업의 명백을 이어간다, 또 한편으로는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포르세나티(Fornasetti)가 보유하고 있는 패턴을 응용, 변형하여 현대화, 상품화하고 있다. 이 디자인 그룹은 나이젤, 코츠, 발렌티노, 꼼데 가르송,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통해 현대성과 전통을 잇는 가교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포르셰나티(Fornasetti)의 이러한 행보가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영역으로의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포르나세티 밀라노 매장©boah



나는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하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사랑한다. 나는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고객과 직접 만나 일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산업화, 대량화로 모든 상품에 감정이 없어지고 단순화되고 정제된 제품들이 일반화되는 가운데 내가 발견한 이탈리아 디자인에는 담긴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나는 포르셰나티(Fornasetti)가 변주한 리나 까벨리에리(Lina Cabellieri)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생각이 다르고 존재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우리는 모더니즘이 이야기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오늘 어떤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내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우리의 디자인은 계속 변화와 퇴보를 거듭하겠지만 그 안에 의미를 담아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디자인을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Reflecti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