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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Oct 31. 2021

옛 담장

관계의 선을 긋다


가문의 영역을 그은 선, 담장


현재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중상류층의 주택들은 신분이 높을수록 집의 담장은 눈에 띄게 높고 견고했다. 그 시대에는 주택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이 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높고 견고한 담벼락의 존재는 곧 신분을 상징했고 가족중심적이며 폐쇄적인 가족공동체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시대에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회는 가족, 가문이었다. 이는 서양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개념이 적어도 그가 속한 사회까지 확장되어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시대의 주택의 모양은 담장을 기준으로 외부에 대해서는 매우 폐쇄적이고 내부로 들어갈수록 개방적인 구조로 변화한다. 상류층일수록 솟을대문의 높이는 하늘로 치솟았는데 대문을 중심으로 늘어선 담장은 외부에 대해 이곳은 자신들만의 공간이라는 단호한 영역의 표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가문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의 무게가 개개인이나 국가보다 더 강했다. 서양의 주택을 들여다보면, 서양의 주택은 외부와는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나 내부로 들어갈수록 각개인이 머무는 실의 경계가 폐쇄적이고 단절되어 있다. 즉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나 개개인이 생각하는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의식은 매우 분명하다.


안동 하회마을의 솟을대문과 외부 담장 ©boah



내부 담장의 의미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들의 내부는 작은 담장들에 의해 공간이 분할되었다. 그 경계의 기준이 된 것은 유교사상이다. 조선시대의 가족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 중심이 아닌 가문 중심이고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남자, 즉 장자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공간은 크게 남자의 공간(사랑채)과 여자의 공간(안채) 그리고 가문의 조상을 기리는 공간(사당)으로 나뉘고 그밖에 부속 공간들이 존재한다. 가문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과 가문의 대를 이를 장자의 공간이 가장 위엄 있는 곳에 위치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펼쳐지고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은 사랑채의 대청마루가 우러러 위치한다. 하인들은 저절로 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가장의 위상이 사랑채라는 공간에서 드높아진다. 남자의 공간은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인 활동의 장소이다. 외부의 손님을 접객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므로 사랑채에는 커다란 대청마루가 인접해 그곳에서 사교와 접객이 이루어졌다. 장자가 성인이 된 후 적정시기에 가계계승이 이루어지면 비로소 사랑방에 기거하게 되었다. 각 지방마다 가계계승이 이루어지는 방법이나 시기에 차이가 있어서 장자의 계승을 전후로 바뀌는 가족의 서열에 따라 방의 크기나 장식에 민감했으며 거처의 위치는 곧 서열의 변화를 의미했다.


유교의 내외 사상은 여자의 공간인 안채를 공간의 안쪽에 자리 잡게 하였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진입하는 중문에는 장벽을 쌓아 가리고 좌우로 통로를 내어 시야를 은폐하였다. 여자의 공간에서도 안채를 차지하는 것을 진정한 안주인의 자리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안채에는 시어머니가 기거하는 안방과 그 몸종의 방이 있었고 대청 맞은편에 장자의 아내의 방이 있었다. 이 또한 지방에 따라 특색을 달리 했는데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장자와 며느리에게 사랑방과 안채를 물려주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안 사랑채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었고 임종 전까지는  사랑방과 안방을 내어 놓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3대 가족이 한 가옥에 거주하면서 구분된 이 공간들은 작은 담장과 건물 자체에 의해 분리가 되었는데 때로는 담장을 지나지 않고도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각 공간은 안마당, 뒷마당, 안사랑마당, 사랑마당과 같이 마당이 있었고 대청마루와 누마루 같은 연결 공간이 있어서 공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가능하게 하였다.

 안동 하회마을, 주택의 내부 담장과 중문 ©boah

관계의 선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을 이루는 경계에는 그 시대의 사상과 이념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이른다. 한국 전통주택은 입구의 솟을대문부터 외부의 높은 담장, 내부를 분할하는 작은 담장들까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능을 한정하였다. 담장이라는 경계는 관계의 단호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하거나 역할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은 담장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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