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소울 Sep 02. 2021

회사에서 나답게 살기 가능한가요?

- 회사에서 눈치 안 보다가 큰일 날 뻔한 썰 -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나와 타입이 다르고 나를 좋아하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더 많다. 이 수적 열세 때문인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더 신경 쓰며 산다.


사회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모습과 내 진짜 모습은 살짝 어긋나있다. 그 어긋나 있는 부분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우려가 글자가 되어 눈으로 보였다. 마음껏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 정작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아직 스스로 정리하지 못한 문제는 글로 쓰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겪어도 되는 건지 꺼내는 일부터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가 '대체 왜 그런 문제를 겪는 거지? 이상하다?' 생각할만한 문제는 감추고 싶었다. 이럴 때는 허당스러움을 드러내는 게 묘약일지도 모른다.

 

“다른 부서의 민원서류 접수가 밀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몇 달 전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퇴근 시간 무렵 부장님이 내게 물었다.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다음날 휴가를 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지금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은 나와 계약직 직원 한 명, 총 두 명이 하고 있다. 이 계약직 직원으로 말하자면 서류 접수와 전산 입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원래 있던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뽑힌 대체 근무자로 이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계약직 직원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아직 업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고, 느리고 실수도 많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내가 하는 사업은 실수가 있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문제 삼지 않고 실수한 부분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고 업무속도가 느린 부분을 내가 더 하면서 버텼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 직원이 내가 하는 사업 말고도 다른 부서의 서류 접수도 일부 맡고 있는데 그쪽 서류 접수가 2주째 밀렸다고 했다. 그걸 들은 우리 부장님은 그 직원이 내가 하는 사업에서 당분간 손을 떼고 그쪽 서류 접수에 전념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억울한 포인트는 내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는 점이다. 물어보니까 대답을 했다. 그 계약직 직원이나 상대편 부서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면 좋겠고, 나 혼자만 희생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며 구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못 도와주겠다 이거지? 알았으니까 됐어. 끊어.”     


부장님은 언짢아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은 하필 내 인내심이 평소보다 부족한 날이었다. 윗사람이 말을 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고 즉답을 해서 마음에 걸렸다.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죄송했고, 출근하는 대로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부장님에게 문자를 보내놓았다.     


다음날 회사에 갔는데 나를 보는 시선이 너무 차가웠다. 부장님을 비롯해 부장님을 따르는 몇몇 직원들은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장님에게 다시 여러 번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당분간은 내가 하는 사업의 서류 접수 업무를 내가 도맡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내게는 이미 ‘동료들을 돕지 않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부장님이라고 자기 마음 알까만은, 어차피 시킬 일이고 이만큼 노여워할거였으면 그냥 처음부터 “내 판단에는 네가 맡아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시를 할 것이지 왜 쓸데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낙오자로 만들어버렸는지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이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여기다. 내 옛 상사인 또 다른 부장님에게서 뜬금없이 퇴근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현 상사인 부장님과 절친이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내 얘기를 전해 듣고 전화하신 듯 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전화했어. 근데… 너 요즘은 글 쓰러 다닌다며? 왜? 회사 그만두고 글 쓰게?”     


얼마 전 점심시간에 옆자리 직원에게 “요즘은 글쓰는 거 배우러 다녀요.”라고 별생각 없이 말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 말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내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자, 부장님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나와 잘 지내오던 옛 상사였기에 괘씸하고 서운한 마음이 크셨을거라 생각한다. 그저 나는 “듣자 하니 너 요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회사생활 더 열심히 해라.”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싶을 뿐이다. 인간불신의 신념을 심고 싶은 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이유는 우리 조직이 원래 이렇고 그동안 나만 몰랐던 것 같아서다. 어쩜 십 년이라는 짧지도 않은 세월을 이 정도 눈치도 없이 살아온 걸까? 자책과 반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내 생각과 행동이 전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거대한 의심의 함정에 빠지기도 했다.     


그 일 이후로 사무실에서 숨도 크게 쉬지 않으며 조심조심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두 부장님은 다시 나를 다정하게 대해주신다. 내가 어긋난 건지, 조직이 어긋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조직 안에서의 판단은 내 몫이 아니고, 여기서 계속 나답게 살아가는 게 상처가 되리라는 건 알겠다.     


회사에 나갈 때는 가면을 써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동안 겁도 없고 속도 없이 맨얼굴로 회사에 다녀온 나를 잘 다독여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언젠가 썩 괜찮은 가면을 찾아내어 쓰고 다니게 된다 해도,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