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san Nov 09. 2019

안티 안넷, 그녀의 아이들

안넷이 돌아오는 날, 잔치가 벌어지는 이웃집 

우리집은 스토코 단지 안에서 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어서, 느슨한 철그물 담장 너머로 이웃집이 바로 내다보인다. 이웃집엔 넓은 마당 가운데는 짚으로 지붕을 얹은 정자같은 방갈로가 있고, 그 앞과 옆으로 각각 단층 건물이 들어서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스토코 단지를 제외한 다른 집들은 이웃집과의 사이에 담이나 경계가 없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남의 집과 마당사이를 넘나들었다. 


우리집 바로 옆집엔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안토니오 또래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 그 위로 두 명의 언니, 십대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들 세 명, 노인과 젊은 여인, 여인의 남편과 서너살배기 아들. 때로는 십대 소녀들도 마당에 왔다갔다 한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 혹은 아이들로 구성되는 핵가족에 익숙한 나에게 이웃집의 가족관계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이사와서 며칠이 지나자, 담장 너머에서 이웃집의 일상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들려왔다. 아침에 방갈로에서는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었났고, 뭔가 고소한 음식의 냄새도 바람을 타고 실려왔다. 바가지 물로 세수 하고 양치하는 소리, 아직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 뉴스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와 기분 좋은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소리......그렇게 일상의 소리를 공유하다 보니 낯선 이웃이 남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담장너머 청년 세 명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밀티, 이 쪽은 죠셉 그리고 압둘라에요." 우리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반가워요. 나는 마르코, 여기는 내 아내 쥬디, 그리고 아들 안토니오에요." 밀티와 죠셉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형제가 아니라 친구사이였다. '친구가 한 집에 살고 있다고?' 초면에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너무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식구들이 많은것 같던데, 형제자매가 몇 명인가요?" 내 질문에 밀티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을 했다. " 저는 아래로 동생들이 일곱명쯤 있고요, 죠셉은 누나랑 동생들이 있지요. 하지만 여기 살고 있지는 않아요. 죠셉은 대학시험을 준비하느라 저랑 같이 살고 있죠. 여기는 제 고모인 안티 안넷의 집이고, 고모의 딸 셋과 죠셉, 압둘라이, 지브릴라 그리고 제가 살고 있죠. 현재는..." 밀티의 말을 들으면서도 누가 누군지 잘 파악할 수 없었지만, 시시콜콜 호구조사를 하듯 물어보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반가웠다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밀티와 죠셉 그리고 압둘라와 안면을 트고 난 후, 발전기를 돌려서 불이 들어오는 밤이면 담장너머 청년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Mr. Marco, small fire please.(마르코씨, 작은 불 좀 빌려주세요)" 만면에 웃을을 띤 얼굴로 작은 불을 빌려달라는 말이 무슨 뜻인고 했더니, 이내 핸드폰과 충전기를 내밀었다. '아하, 충전해달라고!' 표현이 너무 독창적이어서 속으로 감탄하며, 흔쾌히 충전을 해 주었다. 그 뒤로 죠셉은 밝은 불 빛 아래서 대입시험험을 위해 공부를 한다며, 우리집 현관 앞에 앉아서 발전기가 꺼질때까지 책을 읽다 갔고 압둘라이는 안토니오와 기차 장남감을 가지고 놀아주러 우리집에 왔다. 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밀티는 자신과 안티 안넷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밀티의 외할아버지는 세 딸을 두었는데, 첫째가 수도인 프리타운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밀티의 엄마, 둘째가 이웃집의 여주인인 안넷, 그리고 막내는 안넷의 앞 집에 살며 방갈로 가게(05화 마늘 두톨, 땅콩 한봉지 참조)를 꾸리며 살고 있었다. 안티 안넷은 중학교에 다니는 파티마타(14세), 초등학교에 다니는 메리(7세), 그리고 안토니오 또래의 쥴리(3세) 등 세 명의 딸이 있었고, 한 집에 살고 있는 죠셉, 압둘라, 그리고 지브릴라는 밀티의 친구들인 셈이었다. 죠셉의 부모는 전쟁에 돌아가시고, 마케니 근교에 할아버지가 누나,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었고, 압둘라와 지브릴라의 가족들은 더 먼곳에 떨어져 있었다. 안넷은 프리타운 근처의 포토콜로라는 도시에서 내전 당시 어린군인으로 훈련 받았던 청소년들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 NGO에 근무했고, 그래서 월요일에 근무를 하러 올라갔다가 금요일이 되면 주말을 가족과 보내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집에는 안넷의 이모뻘 되는 할머니가 주로 식사 등 살림을 맡아 꾸려갔고, 빨래, 장작패기 등을 비롯해서 힘을 써야하는 일들은 밀티와 그의 친구들이 맡고 있었다. 안티 안넷이 포토로코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그녀는 늘 대가족이 필요한 한 포대쯤 되는 숯, 옷가지, 살림도구 등을 가득 안고 돌아왔고 마케니에서 포토로코로 올라가는 날도 마찬가지로 그 곳에서 필요한 물자들을 사다 날랐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장거리택시인 시에라리온에서, 정기적인 장거리 이동은 장사의 핵심적인 조건이었다. 그녀가 돌아오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이웃집 바깥 부엌에 모여들었고, 저마다 부탁한 물건을 찾아가거나 필요한 물건을 부탁하기도 했다. 안티 안넷이 집에 오는 날이면, 이웃집은 잔치집 분위기가 였고, 특히 안넷의 세 딸들의 얼굴엔 웃음이 넘쳤다. 

                         


일요일 아침, 우리가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무렵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밀티가 유리 접시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밀가루 튀김빵을 내밀며 안티 안넷이 전하는 마케니표 아침식사라며 전해 주었다. 안티 안넷은 그렇게 외국인 이웃인 우리에게도 정을 나누어 주었고, 그녀와 직접 인사를 나눈 우리는 이제 자유롭게 담을 넘나들며 지름길을 이용하여 직장인 마케니 대학까지 통근할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안토니오는 이제 이웃집 안티 안넷의 마당에서 쥴리와 놀았고, 때때로 쥴리와 이웃의 친구들은 우리집으로 몰려와서 안토니오에게 북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아프리카 춤의 정수를 전수해 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