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외모 그리고말투...... 사람알아가기!
학교 돌봄교실에 정식으로 출근하기 전, D시에 있는 A사를 찾아가서 주 18시간 탄력 근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코끼리 학교의 돌봄교실은 오전 11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때때로 부모들이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와서, 퇴근 시간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5시 반이면 퇴근이라서, 돌봄교실의 정규교사들도 근무시간이 최대 30시간을 밑돈다. 보조교사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탄력근무 혹은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수 있는데, 탄력근무는 의료, 고용보험 가입과 기타 세금이 높고, 아르바이트는 근무시간이 주 당 10시간 미만으로 짧지만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독일에서는 유치원, 학교 등 보육, 교육 기관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범죄 증명서와 전염병 예방 접종 증명 제출,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위생 교육을 필수로, 적십자 등 기관에서 실시하는 응급처치 교육을 선택으로 받아야 한다. A사에서는 신입 근무자를 대상으로 O.T를 실시했는데, 어린이 교육을 비롯하여 노인 복지 등 다양한 사업 분야와 세미나, 노조 등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2시간 남짓 걸렸다. 이 오리엔테이션 날 코끼리 학교에 함께 근무하게 될 엘렌을 알게 되었다.
원래 직업이 스튜어디스였다는 그녀는 최근 코끼리 학교 근처로 이사 와서, 집에서 가깝고 시간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직장을 찾고 있었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돌봄교실 보조교사를 선택했다고 했다. 일주일에 2-3일 서너 시간씩 아이들과 만나는 게 삶에 활력이 될 것 같다며, 독일어-불어-영어, 프리랜서 번역과 과외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근무를 시작하고 보니, 모니, 에바, 클라, 크리스 4명의 정규교사 이외에 나를 포함해 보조교사가 6명,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4명, 그리고 실습생이 1명, 청년(FSJ) 봉사자가 2명 총 17명이나 되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만나게 된 것은 2주에 한 번 있는 전체 회의였는데, 특히 보조교사들은 근무 일자와 시간이 제각각이라서 회의 때가 아니면 아예 얼굴을 못 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하루에 3시간씩 주 4일 근무를 해서 대부분의 동료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거의 100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친해지는 일과 함께 동료들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팀 전체를 통솔하고 있는 모니는 "독일의 어머니"로 불리는 총리 메르켈처럼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체격, 짧은 금발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없을 때 가끔 담배도 피우며, 여장부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모니는 주로 알 테라트 하우스라고 불리는 건물의 사무실에서 학부모와 상담, A사와의 소통, 학교와 협력 등 근무자들의 스케줄 관리 등 사무를 보고,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학교 건물로 들어서면 바로 리셉션에서 아이들을 비롯한 교사, 학부모 학교를 찾아오는 거의 모든 사람을 첫 번째로 만나는 클라는 짧은 단발에 다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다. 폴란드계의 성으로 보아서 남편이 폴란드 사람이거나 본인도 그쪽 혈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독일어에 특별히 억양이 없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흰 단발머리의 에바는 정규교사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인다. 말수가 적고, 깐깐해 보이는 인상에 기숙사의 사감을 연상시킨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동독에서 교육을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는 누군가의 소개 덕분에 성격이 더욱 딱딱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크리스는 정규교사 중 근무시간이 가장 짧은데, 당료가 있어서 많이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전체적으로 지켜보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보조교사로는 일주일에 2번 정도 잠깐 머물렀다 가는 마리는, 초여름, 늦가을에도 늘 나시와 짧은 바지 차림으로 아이들과 외부의 활동을 즐겼다. 아주 말수가 적은 미켈라는 식당이 있는 적십자 건물에서 아이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주며, 조용히 집중하여하는 작업을 좋아했다. 사실 그녀는 화가였는데, 취미이긴 하지만 몇 차례 개인전도 열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있어서 역시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하는 베네사, 그리고 내가 근무를 시작할 때 즈음 일을 그만둔 남자 보조교사 마누엘, 그리고 엘렌이 "우리" 보조교사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다. 가끔 근무자들이 한꺼번에 아프거나 일이 있어서, 사람이 모자랄 때 등장하는 백기사 루카도 있었는데, 아마도 간헐적인 아르바이트 계약을 맺은 것 같았다. 매번 이름을 헷갈리는 주방의 안넷, 브리타, 카탸, 루스는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지만, 근무 연차도 길어서 정교사들과 익숙한 사이이고, 아마 동네에 살고 있어서 몇몇 아이들의 부모나 조부모와 아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근무자 중 유일하게 정규직처럼 하루에 8시간을 꽉 채워 일하는 실습생 레나는 모니의 사무보조를 비롯하여 돌봄교실의 모든 프로그램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되어 있어 보였다. 그녀는 전 근무자가 참여하는 회의뿐 아니라 정규교사들만 따로 모이는 소그룹 회의에도 참석하여 서기를 맡고,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긴 만큼 아이들의 신뢰와 권위를 갖추고 있었다. 스무 살 정도로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보조 교사들은 늘 그녀에게 아이들에 대한 혹은 돌봄 교실의 규칙에 대한 질문들을 했다. 청년 봉사자인 펙릭스와 소피는 미성년의 10대 후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이나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경험 쌓기 혹은 직업탐색의 일환으로 1년 간 봉사 체험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급여를 받지 않고, 얼마 간의 수고비와 경력을 쌓게 된다.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이 세 청년들에게 아이들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 나머지 교사들에게는 우리의 "선생님"격인 Frau/Herr를 붙여서 성을 부른다.
사실 아이들의 눈치는 100단이어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말투, 표정, 눈 짓 등등을 통해서 그 관계를 귀신같이 꿰뚫어 본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나 같이 초짜 보조교사의 말 따위는 듣지도 않는다. 내가 아직 돌봄교실의 규칙을 배워가는 과정임을 파악하고는, 깐깐한 정교사를 앞에 두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을 꼭 나한테 물어본다. 마치 내가 어리바리 허락을 하면, 나중에 정교사에게 혼날 화살을 돌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신입 보조교사는 그래서 오늘도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가만히 서서, 조용히 관찰한다. '외국 억양이 잔뜩 섞인 나의 독일어를 아이들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놀리면 어쩌나?' 아이들의 다툼은 "가능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이라는 신념을 방패 삼아 아이들의 크고 작은 다툼 상황을 멀찌감치 외면하고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