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eon Mar 01. 2017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한다.

작은 자서전 인터뷰 후기

“고생한 것들 다 (인터뷰에서) 말하라고 아들은 그러는데, 그걸 어떻게 다 말로 해. 아휴, 다 못 해.”


그 시대 여자들의 삶이 대개 그러하듯, 참고 견디는 삶이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삶. 열일곱에 시집 와 분가한 뒤 육십 년을 떠나지 않고 한 집에 살았다. 집도 그녀만큼 나이를 먹었다. 작고 오래되고 아담한 집에 사는, 그 집을 닮은 작고 오래되고 아담한 여자. 그리도 고생시키던 남편은 진작 세상을 뜨고 자식들도 하나둘 저마다의 삶을 찾아갔는데, 여자는 그렇게 그 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는 아버지 빈 젖을 빨았다고 한다. 껌딱지처럼 아버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배고프고 모진 시간들을 부녀가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그 아이가 하루아침에 시집이라는 걸 가서 생판 남의 집 치다꺼리를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가 보고 싶으셨겠어요”

하고 물으니,

“말로 다 못 하지. 쌀밥 먹을 때마다 '아버지는 밥 굶고 있을 텐데...' 생각하니 밥이 안 넘어가”

먹먹한 답이 돌아온다. 딸이 시집가던 날,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다.


아버지는 딸이 쌀밥 먹고, 고생 좀 않고 살길 바랐건만. 한평생 ‘다 말로 못 하는’ 삶을 살아온 딸, 팔십팔 세의 여자 앞에 우리가 앉아 있었다. 다 말로 못 하는 그 이야기를 들으러 우리가 여기에 와 있구나 싶었다. 살면서 가장 잘 한 것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은 것’이라 말하는 할머니가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돕기 위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