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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 May 20. 2019

엄마의 이별

한 살짜리 고양이 오디를 떠나보내는 엄마를 지켜보며

엄마는 얼마 전까지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지금은 아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엄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떠나보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며칠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있는 엄마가 아니라, 이미 떠나보낸 엄마. 그런데 사실 엄마는 아직 그 고양이를 보내는 중이다. 이별 후유증을 겪고 있으므로.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했는데.


태어난 지 일 년이 채 못 된 그 고양이의 이름은 ‘오디’다. 내가 엄마의 첫 고양이 이름을 ‘살구’로 지어 준 이래 엄마의 네 마리 고양이들 이름은 과일 시리즈가 되었다. 오디는 엄마 집에서 태어났다. 오디의 고양이엄마 '자두'가 구조되기 전 길에 있을 때 갖게 된 아기들 중 한 마리다. 아기들은 원래 여섯 마리였는데, 태어난 지 며칠 안에 제일 약한 두 마리가 죽었다. 입양을 보내야 하니 정을 붙이지 않겠다고 엄마는 아기들 이름을 태어난 순서대로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 사동이라고 지었다. 이동이와 사동이는 입양을 갔고, 일동이와 삼동이는 고양이엄마와 사람엄마 곁에 남았다. 오디의 아명은 일동이였다. 비로소 오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아프기 시작한 때쯤이었다. 턱 부분만 하얀, 검정 턱시도라서 오디. 치즈태비였던 삼동이는 귤이가 되었다.

아깽이 시절, 건강했던 오디

오디는 고양이 복막염에 걸렸다. 고양이 복막염은 고양이 몸 속의 코로나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때 발병하는데,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지 않아 치사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무서운 병이다. 고양이가 사람과 더불어 살게 된 지가 오래 되지 않아 고양이에 대해 사람은 이렇게나 모른다. 게다가 딱히 정확한 진단 방법없어, 병원에서 아이가 아프기 시작할 거라고 엄마에게 그랬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막연히 진단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다른 병원에도 가 보라고 했고, 실제로 다른 병원에도 가 보았지만 결국 오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잘 먹지 않기 시작했다. 덩치는 커도 아직 한 살도 못 된 아기 고양이였는데, 가엾게도 오디는 점점 죽어 가고 있었다. 고양이 복막염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복수가 차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점점 말라 가경우이다. 오디는 후자에 속했다. 엄마는 이름도 뒤늦게 붙여 준 그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밥을 더 먹을 수 있도록 밤낮으로 입에 간식과 사료를 넣어 주었고, 오디는 힘들어도 엄마의 정성에 잘 따라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며칠 전 엄마가 우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오디가 죽었다고. 엄마는 오디가 그렇게 약한 상태로 그냥 쭉 살아갈 줄 알았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 같았다. 죽을 거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디는 죽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승리가 의정부에 가 보자고 했다. 자기가 태어나서 쭉 살아온 방에서 숨을 거둔 오디는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만져 보니 이미 굳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새벽 도로를 달려 파주의 한 동물 화장장에 가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오디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 날은 어떤 일들이 이상하게 맞아떨어지는 꿈 속 같은 날이었는데, 화장장은 비현실적으로 외진 곳에 있었고 거기까지 가는 길도 비현실적으로 어두웠으며 그곳에 동물을 데려온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죽음은 늘 비현실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가장 잔인한 현실이 된다. 엄마는 엄마의 할머니 때도 엄마의 아버지 때도 임종의 순간에 곁을 지켜 보지 못했다면서, 오디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슬퍼했다. 죽음은 늘 때맞춰 오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오디의 죽음에서 엄마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떠나보낸 이들의 자리에 이제 오디도 들어가 있었다.


엄마는 지금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산다. 한 마리는 집에 없지만 아직 떠나보내는 중이다. 엄마는 어쩌다 보니 고양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여겼던 이별을 한번 아주 급하게 겪게 되었다. 어젯밤에 엄마가 전화해서 우울하다고 했다. 늘 오디와 함께 있었던 귤이도 밥을 먹지 않고 축 쳐져 있다고 했다. 오늘 엄마가 보내 온 사진에서, 그 동안 합사를 망설여서 오디와 함께 격리되어 있던 귤이가 살구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귤이를 오디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며, 귤이와 함께 오디를 아직 떠나보내고 있다. 내일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아야겠다.


- 201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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