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도시의 여고 교장인 그는 중간보다 큰 키에 소박한 눈매를 갖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답게 감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그는 웃는 모습이 선해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교장실에 마주 앉았고 그의 뒤편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하늘은 파랗고 교정의 나무들엔 봄빛 물이 올라 있었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교사로 부임하기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같은 교사인 아내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묻자 쑥스러운 듯 웃으며 물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당차 보였다는 첫인상부터 부장선생님 심부름을 계기로 첫 데이트를 하게 됐고 애프터 신청을 했던 이야기, 3년을 사귀고 결혼했다는 이야기까지. 아내는 자기의 어디가 좋았던 것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두 젊은 교사의 설레는 첫 데이트 얘기를 들으며 나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까무잡잡하고 총기있는 스물여덟 청년의 얼굴을 본 듯도 했다. 그때 그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는다. 아들이 그를 많이 닮았다. 초임 교사인 아내를 처음 만났던 30년 전 그날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그리 먼 과거로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1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