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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양 Aug 07. 2020

인생의 중간항로를 어떻게 보낼 건가요?


                                                                              

글쓰기 모임에서 나눈 교환일기의 일부입니다:)


 교환일기의 첫 날, N님의 질문이 꽤 오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중간지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물었었죠?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내 삶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신기하게도 다른 독서모임에서마저 비슷한 질문을 받아서 지금이 이 고민을 해야할 시기인가 하고 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봤습니다. 


 아직 30대 초반을 살고 있는 저는 인생을 24시간으로 보았을 때 오전 10시를 살고 있겠네요. 오전 10시면 한창 아침 공기가 가시지 않을 시간인거죠. 새삼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아침부터 참 고단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19살에 실습 겸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24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25살에 결혼을 하고, 28살에 하준이를 만나 육아(育我나'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20대에 이미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내 삶'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심해졌지요. 인생 중 가장 찬란해야할 20대를 더 빛내지 못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숨어들었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남편과 아이와의 만남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내 삶'을 향한 욕망과 갈증은 해소하지 못했어요.


 나는 뭔가 더 해낼 수 있는 사람일텐데, 이렇게 아이 키우면서 빛이 바래질 사람이 아닌데, 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텐데.. 하면서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일을 시작했을 정도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남편 도시락을 챙겨놓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출근하는 일상을 스스로 굉장히 만족하면서 다녔어요.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음에도 압박붕대로 가슴을 꽁꽁 동여매고 엿기름 물을 2리터씩 챙겨 다니며 엄마라는 이름과 분리되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게도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시작하고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점점 아이와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되어갔어요. '엄마'란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바로 설 수 있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어느날 아침 출근준비를 하면서 꼬물거리는 녀석을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처음으로  저의 삶에 대한 혼란이 왔어요. 저만 믿고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맡긴 한 생명을 보면서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건지, 내 인생과 아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질문이 밀려오더라구요. 결국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때부터 아이를 온전히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마 이맘쯤이었을 거예요. 육아서를 읽고, 심리서를 읽으면서 자아성찰을 시작한 것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시작한 독서가 저를 여기까지 끌어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아이를 보면서 이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이런 성향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등의 기대를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즐겁게 세상을 탐색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그럼 나는?'이라는 질문으로 끝이 났어요. 하나의 물음표가 저의 시선을 아이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건가?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있나?'


                                        



                                                                                                                                                          

 아마 이 때가 제 삶의 가장 큰 변곡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뭔가를 꾸준하게 해본 적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아이를 거울삼아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간 살아온 패턴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니까요. 


 어쩌면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모성이 강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지난한 삶은 아프고, 아프고, 또 아팠지만 너만은 그러지 않기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라는 존재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작고 예쁜 가슴이 상처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뒤늦게 덜 자란 저 자신을 키우고자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알고보니 저는 자기애가 강한게 아니라 모성애가 강했다는 반전(웃음).


 오전 10시. 저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삶 덕분에 아침 어스름 끝에 솟아오르는 여명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모든 시간이 따스한 아침 햇살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N님이 물으신 인생의 중간 지점은 아마도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피할 그늘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는 시간으로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지금처럼 책과 함께, 책을 통해 만난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요.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아이를 사랑하는 나를 아껴주기 위해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부끄러운 민낯을 보이며 저의 삶 중간 지점을 빼곡히 채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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