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유행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24.10.18 단상
근래에 소위 MZ세대 사이에서 독서가 유행하고 있다. -텍스트힙이라는 말도 쓴다- 뉴스들을 몇 개 확인해보면 이러한 현상은 최소한 올해 초에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것은 올해 중순부터인 듯 하다. 그 사이 MZ세대에 사회적인 이미지였던 명품백, 카푸어, 골프 등의 유행은 비교적 사그라든 듯 하다.-이건 해가 끝나보고 수치가 나와봐야 아는 것이지만- 이러한 유행은 며칠 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가속도가 붙었다. 진도가 빠른 연인은 이별도 빠르다던데, 그렇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MBC는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황석영 작가와 김이나 작가를 방송에 불러 대담을 진행했다. 이 방송에서 한 청중은-실제로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유행으로, 또 있어보이기 위해 소모되는 고전 읽기에 우려섞인 반응을 보였다. 황석영 작가는 독서란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며 디올백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답변한다. 동의한다. 제 3세계의 아동들과 기타 노동력을 착취해 만드는 원가 8만원짜리 백보다야 책을 사는게 좋다.
황석영 작가는 아무래도 사람들을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 중 -대다수는 아니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읽었다는 듯 인증샷을 올린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필자 만큼이나 황석영 작가도 어떠한 면에선 오만하다. 믿음도 불신도 모두 오만의 결과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런게 아니다. 독서 유행의 밑에는 무엇이 있는가?
없는 살림에 허세를 위해 명품백, 골프등을 즐기던 MZ세대들은 어째서 독서로 갈아탔는가? 단순히 질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텍스트힙이 본격화된 시점과 불경기가 시작된 시점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독서는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취미이다. 한 권을 사면 보통 세시간은 읽을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중편소설 -페이지당 글자 수도 적은데 200쪽 정도- 인 『구의 증명』을 읽는데 두시간 정도 걸렸다. 비싸게 쳐서 한 권에 2만원이라고 해도, 한 주에 한 권을 사면 한달에 8만원에서 10만원 정도 뿐이 되지 않는다. 좋은 책의 경우 여러번 읽기도 용이하다.
여기서 MZ세대들이 명품백에 집착하고 오마카세에 집착했던 이유를 돌아봐야한다. 그들은 뼈가 부숴지도록 일해도 부모보다 잘 살기 어려운 세대다. 또 집을 사기도 어렵다. 그러니 쓸 수 있는 곳에 돈을 쓰며 즐기자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싼 취미로 이행한다는 건 무엇을 함축할까? 어차피 집도 살 수 없던 MZ세대들의 구매력이 더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수 년 동안 살기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본격적인 불경기가 시작된 것은 그렇게 오래진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기 직전까지는, 코로나가 끝난 이후의 비교적 호경기였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기업들의 창고에 쌓여있던 물품들, 또 기존에 계약을 해놓았던 물품들이 모두 동난 이후 본격적으로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불경기를 가장 체감하기 좋은 곳은 자영업이 몰리는 거리나 백화점 식당가다. 백화점 식당가를 돌면 확실히 인적이 줄었다.
호경기인 상황에서 이런 텍스트힙이 유행했다면 필자는 쌍수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단순히 허세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는 것이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가난해지면서 향유되는 문화를 단순히 환영할 수만은 없다. 설령 독서가 유행한다 하더라도, "소풍에 중식제공"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고 학교에 "우리 아이는 한식을 먹어야 한다."며 민원전화를 하는 학부모들는 여전히 빗발칠 것이다.
그래서 이 유행을 마냥 환영할 순 없다. 물적성취없는 문화는 공허하고, 문화없는 물적성취는 천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