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쫄쫄이와 올챙이 가면, 이것은 연극에서 내가 입었던 의상이다.
한 살때 자기 기저귀를 잡아당기면서 장난쳤다는 것까지 기억하는 남동생과는 다르게, 나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 다만 사진처럼 남아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을 뿐인데,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7살 무렵의 나는 꽤나 활발했고 극성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맘 때의 나의 옷차림은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빨간 꽃무늬의 원피스에 스누피 그림이 복숭아뼈 쪽에 그려진 흰색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당시 한창 유행하던 롤러브레이드를 신은 모습이다.(으악) 카드캡터체리처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벚꽃길을 지나며 학교에 가는 그런 낭만적인 모습은 아니었고, 뭔가 거친 뒷골목의 아저씨 느낌이었던 것 같다. 듣기만해도 충격적인 비주얼인데 당시 나를 마주했던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넌 여자애가 왜그러니”라는 말은 당시에 하루에도 열 번씩 듣던 이야기였다. 그때는 롤러브레이드에 푹 빠져서 어른들의 그런 말들은 그냥 칭찬인가보다(?)하고 태평하게 지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의 초등학생 동네 언니와 우리 집앞에 살던 내 동네 친구, 이렇게 우리 셋은 롤러족이 되어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호기심이 한창 많은 나이 때의 아이들이 셋이나 뭉쳐다녔으니, 크고 작은 사고들을 치고 다녔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금 기억나는 것은 바로 내 생에 첫번째로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다.
그 불장난은 하천이나 강 옆에서 쥐불놀이를 하는 그런 전통적이고 올바른 느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집안에서 호기심 많은 아이 셋이 둘어앉아 불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풀어내는 그런 자리였다. 지금도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팔각형 성냥갑에 성냥이 잔뜩 채워져있고 옆면의 빨간 부분을 통해 불을 필 수 있는 그런 제품이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생 언니의 집에서 다같이 이 성냥갑에 둘러앉아 한 명씩 성냥개비에 괜히 불을 붙여보고 끄고 그런 일을 반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때이다. 셋 중 누군가가 성냥개비가 너무 뜨거워서 떨어뜨렸는데, 그만 황토 장판에 불이 붙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롤러족 3인은 그 자리에서 어버버하다가 불이 더 커지기 전에 다행이 그 불을 꺼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거실 한 가운데의 장판은 검게 그을렸고 꽤 큰 구멍이 생겨버린 뒤였다.
그 뒤는 다들 예상할 수 있는 대로이다. 동네 언니의 부모님이 장판이 탄 것을 발견하셨고, 우리집과 동네 친구의 집에 전화하여 결국 우리 부모님도 나의 불장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혼난 기억이나 따로 외출금지 등 제재를 받았던 것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크게 혼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불장난은 정말 위험하다. 그때 불을 제때 끄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지 않았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린 독자분들은 주의하시길!)
흰색 쫄쫄이와 올챙이처럼 생긴 가면, 이것은 연극에서 내가 입었던 의상이다.
한창 유치원에서는 졸업 학예회를 위해서 열심히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고, 우리 반은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가”라는 주제로 연극을 준비했었다. 나는 그 연극에서 ‘정자3’ 정도의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난자와 만나 수정되는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아 나는 목표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흰색 쫄쫄이와 올챙이처럼 생긴 가면을 쓰고 몇 줄 안되는 대사를 열심히 연습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역할인지, 우리 연극이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난자 역할을 맡은 친구들은 네 명이서 손을 둥글게 모아잡고 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막연하게 “혼자가 아니라 네명이서 같이 있을 수 있다니 부럽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다행히도 큰 트라우마가 없는 것을 보면, 혼자서도 맡은 역할을 실수하지 않고 잘 해냈던 것 같다.
요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정확히는 연극을 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그 연극을 지켜보았을 엄마아빠의 모습이 상상된다. 얼마나 귀엽고 충격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