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 근처 바에 갔다가 바텐더 분과 가벼운 토크토크를 나눌 수 있었다. 내년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26살이라고 하시더라.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3년 전의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생각을 했는데, 그맘 때는 내가 개발을 이제 막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시기였다. 오늘은 그때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케냐 생활 말미부터 삼성 13인치 노트북에 파이썬을 깔아 “hello, python”부터 따라치면서 개발 공부를 띄엄띄엄 시작했었는데, 아무래도 네트워크 상황도 안좋고 일도 바쁘다보니 공부를 계속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개발을 한번 제대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케냐에서 일을 하는 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어떤 기관에서는 내년도에 함께 일해볼 수 있겠냐는 감사한 제안도 주셨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미 IT 업계로 커리어 전환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아쉽게도 거절의사를 전달드렸어야 했다. 좋은 기회도 포기하고 내린 결정인만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짧았던 케냐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보고 싶었던 가족들, 친구들과 어느정도 인사를 나눈 뒤, 열심히 개발을 배울 수 있는 루트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당시의 나는 개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아는 개발자 지인도 없었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히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마르코 님의 브런치 시리즈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다양한 부트캠프가 없었기도 하고, 당장 부트캠프에 몇 백만원의 돈을 쓸만큼 자금이 여유롭지도 않았기에, 나는 나라의 도움을 받아 개발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컴퓨터학원의 국비지원 과정을 들으면, 약 몇 백만원짜리 수업과정에 대한 지원과 함께 매달 30만원 정도의 취업 장려금도 준다고 하니, 여러모로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었다.(엄마, 아빠가 낸 세금, 제가 드디어 써먹었어요…!) 여러 개발 커뮤니티를 돌며 컴퓨터 학원과 국비 지원과정에 대한 후기를 종합하여 하나의 컴퓨터 학원을 추려냈다.
그렇게 나는 귀국한 지 3일만에 국비지원학원에 면접을 보러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개발자 취업에 대한 관심도가 한창 상승하고 있었을 때였기에, 국비지원과정에 대해 지원자가 매우 많은 상황이었다. 내가 찾아갔던 학원에서도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면접을 별도로 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불타는 열쩡!으로 수월하게 면접을 통과하고 과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정 첫 날, 앞으로 6개월간 같이 공부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반의 경우, 전공자 친구들도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전공자 친구들이었다. 해외에서 일하던 사람, 요리사로 일하던 사람, 아직 대학 졸업을 안한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함께 공부를 했다.
야심차게 개발 공부를 시작했지만, 개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훨씬 어려웠다. 워낙 기존에도 컴퓨터와 친하지 않았던 터라, 언어를 배우는데만해도 엄청나게 애를 먹었었다.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시간을 다 할애했지만, 과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나날들이 이어졌고, 내 옆자리 짝궁들은 모두 능숙하게 잘 해내는데, 나만 고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괜한 길을 들어왔나, 정말 소질이 없나보다 하고 엄청나게 좌절을 했었다.
언어공부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프레임워크를 통해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시작하고나서야 비로소 나는 개발의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매번 개념을 배우고 나면 팀 프로젝트를 하며 팀원들과 간단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발표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다같이 기획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
이렇게 같이 공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마주한 에러가 아니더라도 다같이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누구 하나라도 에러의 원인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모든 팀원들이 다같이 그 친구의 모니터를 보며, 누가 먼저 원인을 찾아내나 은근한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우리 팀이 아니라 다른 팀이었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모두가 서로 돕고 돕는 든든한 동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카카오나 네이버 API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부터는 개발이 훨씬 재미있어졌다. 내가 평소 사용하던 서비스들에서만 보던 “카카오로 로그인하기” 기능을 직접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네이버 검색 API를 사용해서 검색 결과를 내가 만든 웹사이트에 뿌려줄수도 있게 되었다. 한번 이렇게 외부 API 를 이용해 서비스를 만들고나니, 이제는 그 어떤 기능이라도 문서를 참고하며 차근차근 만든다면,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비 지원 학원은 보통 “언어 2개월 → 프레임워크 2개월→ 포트폴리오 용 팀 프로젝트 2개월” 의 과정을 6개월간 진행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는데, 마지막 팀 프로젝트의 경우,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로 이용되기 때문에 좋은 팀원들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 중요하다. 이 시기가 오면, 평소 눈여겨 봤던 팀원들을 모아서 같이 팀을 이루기 때문에 교실 내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두 개의 팀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었는데, 교육 초기때부터 바로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던 친구가 있어서 그 팀에 합류하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막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학원 내 전체 발표를 해야하기도 하고, 결국 포트폴리오로 연결되어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다보니, 이 프로젝트는 모두들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2개월동안, 우리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발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하나씩 서비스를 완성해나갔다.
우리 팀의 경우, 직장인 카풀앱을 만들기로 하여 각자 기능별로 역할을 분담한 상태였다. 카풀의 경우, 차주와 승객 등 두 부류로 사용자가 나뉘기 때문에, 우리는 차주를 위한 서비스와 승객을 위한 서비스, 두 개를 만들어내야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매칭서비스를 해서 일을 두배로 키워버린 건 아닌지,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즐겁고 재미있게 개발을 해나갔다. “연차”라는 멋진 서비스 명도 지었다.
아직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기억 중 하나는 바로 학원이 있었던 인사동 동네를 노트북을 들고 모든 팀원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던 일이다. 카풀 서비스의 차주와 승객을 매칭하기 직전에, 지도상에서 각 사용자의 위치를 표시해야하는 화면이 있었다. 지도 API 연결 역할을 맡은 한 친구가 몇 일 내내 그 기능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어느날은 ‘오! 됐다…!!!!!’ 라면서 환호성을 지르는게 아닌가. 그 친구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 팀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뻐했다. 그리고는 이 지도 API 에 떠있는 현재 위치가 실제로 잘 동작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직 서비스를 배포하기 이전이라, 우리는 휴대폰으로 이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에는 작업하던 노트북을 그대로 들고 학원 밖으로 나가서 우리 건물 주변 동네를 한바탕 신나게 뛰었다. 우리가 움직일때마다 노트북 속의 현재위치 마커가 우리를 따라 움직였고, 그에 신난 우리는 이리저리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한뭉태기의 다 큰 어른들이 노트북 하나를 들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참 웃겼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에게 그때의 기억은 거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벌써 개발자로 일을 한 지, 3년째가 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개발을 했던 것은 그 때로 기억된다. 순수하게 개발 자체만으로 울고 웃었던 그 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마지막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사동 한바퀴를 돌았을 때가 벌써 3년 전이다. 지금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들은 모두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우리 팀원들은 모두 한번에 잘 취직을 했다. 그때의 나는 사회적 가치를 미션으로 삼고 있는 기업에 가고 싶었고, 주체적으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에 가고 싶었다. 여러 회사들 중, 한 곳을 찾았고, 다행히도 면접을 잘 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곧이어 괜찮은 곳에 하나씩 취업을 했다. 그때의 우리는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큰 기업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들 취직을 하여 어엿하게 개발자로서 밥벌이를 해나가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지금 비슷한 시기에 다들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에는 매일 아침 7시부터 2시간동안 같이 코딩테스트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이 하루종일 개발 이야기를 하며, 노트북을 들고 인사동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문득문득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