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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오아이모이 Dec 30. 2022

디자인 팀장님의 최종 목적지는 업계를 떠난 것이었다.

7년 전 입사했던 한 회사. 난 가장 어린 나이로 팀에 막내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전형적인 보수적인 회사였기에 다소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그만큼 긴장했던 회사였다.



팀장님은 나보다 10년 이상 더 경험이 있으신 미혼의 팀장님이셨다. 신입으로써 첫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디자이너 팀장님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회사 구조 상 탑다운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했기에, 주어진 담당 디자인 업무를 했고, 디자인으로만 피드백을 받았었다. 타 팀과의 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때도, 첫 미팅에는 늘 팀장님이 함께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이 부족했던 나에게 작은 울타리였다.


팀장님과 나는 결코 편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 사이에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그런 관계였다.



보수적인 조직문화에서 디자인팀은 힘이 없다. 생각해 보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발 기술처럼 적용하고자 하는 기술이 명확하게 반영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주관적인 평가가 포함되는 디자인은, 노력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참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그 속에서 불편한 부분도 꽤나 있었고, 팀원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 불만은 '팀장님에게 향하는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나의 생각과 말을 감추고, 그냥 묵묵히 내게 주어진 일만 처리하기 바쁜 어린 디자이너였다.



시간이 지나 회사를 퇴사를 하고, 한동안 팀장님을 잊고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ㅇㅇ팀장 뭐 하고 지낸대? 연락해?"라고 물어올 때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로 대답을 일관했다.


사실, 건너 건너 가끔 소식을 들었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굳이 어떠한 이야기도 전하고 싶지 않았다.





7년 후, 우연히 팀장님 소식을 접했다.


나도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어느 정도의 직급이 오르고, 후임디자이너를 함께 이끌어가야 하는 시니어 디자이너.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되었다.

디자인만 하는 역할이 아니기에, '아 그때 팀장님은 어떻게 하셨더라' 또는 '팀장님이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하셨을까'하며 종종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잊고 있었던 팀장님의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퇴사를 하시고,

작은 베이커리 브랜드를 런칭하셨다는 것.

디자인업계를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팀장님이 새롭게 시작한 브랜드를 보며, 브랜드 스토리에 담긴 의미. 그 무드 속에서 찬찬히 내 기억 속에 있는 팀장님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40 중반의 여성이 오래 조직생활을 해오면서, 결코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억누르며 참아왔을 그곳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기까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홀로 굉장히 외로웠을 것이다. 책임자로서. 팀장으로서. 디자이너로써.



그렇게 긴 조직생활을 끝내고,

홀로서기한 나의 팀장님. 용기가 너무나 멋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 팀장님과 한 번씩 1:1 식사 티타임을 했었다. 팀장님으로써는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긴장모드였다. 식사가 잡히면, '어색하면 어쩌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이내 느슨해졌다. 팀장님은, 식사자리에서 회사 업무 일에 대한 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정말 소소한 개인 일상 얘기들. 관심사. 취향을 공유했다. 아마 편하게 다가오기 위한 팀장님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식사 후에 커피와 빵은 국룰인 것처럼, 회사 근처 유명한 디저트가 포함된 곳에서 팀장님과의 티타임이 종종 이루어졌었다. 그런 팀장님이 자신의 디저트 브랜드를 론칭하신 것이다.






10년 차 디자이너.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팀장님의 소식은, 아울러 나의 디자이너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10년 차.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나는 또 어떤 결정을 하고 나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을지.


어떤 면을 위해 더 나아가야 할지. 


팀장님의 소식은, 사실 나를 빗대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참을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


ps. 사실 퇴사 후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 팀장님의 새로운 시작 도전을 마구 응원해드리고 싶다. 표현에 서툰 나는 팀장님은 울타리였고, 막내디자이너로써 본보기였다고 감사했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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