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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Eun Cho Apr 08. 2020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어

제주에서 '나의 여행' 찾기

사실 나의 목적지가 원래부터 제주도는 아니었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더라면, 지금쯤 대양주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양보다 도시 관광을 더 좋아라 하는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었고, 나름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불가항력적으로 갈 수 없게 되면서 그 꿈은 좌절되었다.


'여행'이 좋아서 '여행'사에 입사한 지 어언 2년 반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여행'으로 만드는 것을 꿈꿨다. 단순히 중국 여행에 매력을 느껴서 'Only 중국'만 외쳤던 나는, 그저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다 지금까지 중국 외 8개 나라를 담당하는 '여행 코디네이터'가 되었다. 앉아서 가보지도 않은 나라를 머리를 쥐어짜며 셀링 포인트를 찾고 손님을 설득해 '여행을 보내는 일'에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남의 여행'을 챙겨주다 보면 '현타'가 온다.

'그럼 나는 언제 내 여행가지?'


실컷 '남의 여행' 챙겨줬던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나의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음.. 그럼 제주도라도 가볼까?'

그냥 집에 있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내가 꿈꿨던 여행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으니, 우리나라의 휴양지를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동안 가장 행복한 때


'여행 기간 동안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일까?

바로, 비행기를 탔을 때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막 시작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 이후에는 집에 돌아갈 생각에 계속 우울해진다.'면서..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고 생각했다.



여행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설렘'을 계속 지속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이따금씩 찾아오는 권태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나는 여행을 떠올렸다. 여행을 계획하다보면 어느새 생기를 되찾게 되고, 그 생기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나의 삶의 생기이자 '설렘'을 유지시켜주는 장치이다.


제주에 있는 일주일 동안의 숙소는 한 곳으로 정했다. 1박 가격이 꽤 저렴하기도 했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액티비티들에 유독 관심이 갔다. 무엇보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는 "일상에서 빠져나와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내가 지향하는 여행의 컨셉과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스 캠프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준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 객실
플레이스 캠프 제주

호텔에 체크인 하고 짐을 푼 다음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렇게나 넓은 차도에 자연과 나 둘 뿐이라니..가슴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한다. 배경 음악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로 정했다. 그 이유는 사랑의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라는 노랫말이 제주 여행에 대한 나의 설렘과 같아서다.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는 길


숙소에서 30 여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오늘의 저녁, 제주에서의 첫끼를 먹을 식당이다.


경미네집,

해물라면과 성게밥으로 유명한 집이다. 둘 중에 육지에서 맛보기 힘든 게 뭘까 고민하다가 성게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성게밥은 성게+밥+참기름+김+참깨로 이루어졌다. 단순해보이지만, 그 맛은 오묘하고 맛있다. 그 오묘한 맛과 함께 바다 내음이 가득한 미역국 한 숟가락은 정말 꿀맛이었다.


경미네집 성게밥


식당 영업 마감시간 30분 전 들이닥친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밥은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이 집, 참 사랑스럽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성산일출봉으로 저녁 산책을 나섰다. 몇 년전 엄마와 단둘이 왔을 때도 이곳에 왔었는데 그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입장 마감시간에 가까워 들어갈 수나 있으려나 했는데,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무료로 관광이 가능한 코스가 있었다.


Tip 매표소-검표소-전망대-우뭇개해안으로 이뤄진 좌측해안 탐방코스를 이용하면 무료로 탐방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


전망대에 올라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일출봉이 선사하는 위엄에 그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어느새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 어두운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어두웠다. 아까는 사람이 없어서 좋은 길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요즘 아무리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고는 하지만, 여럿이어야 좋은 시간들의 소중함은 이길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오늘을 보내기엔 아쉬워서, 숙소 안에 있는 카페에 갔다. 찬 바람을 한 시간 가까이 맞아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싶었다. 이때 딱 어울리는 음료가 하나 있지, "핫-쪼코 한 잔!"


도렐 커피 핫초코


마시멜로우 꼬치가 핫초코 위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다. 핫초코 온천을 즐기고 있는 올라프 같았다. 나의 단짝 노트와 펜으로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제주와의 첫 날을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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