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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Eun Cho Apr 13. 2020

옮겨 살아 보면

살아 움직이는 힘이 느껴져

오늘은 어떤 아침으로 힘을 내서 다닐까? 오늘도 열심히 다녀야 하기 때문에,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었다. 주변에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래, 나가서 직접 찾아보면 뭐 하나는 있겠지! 끌리는 대로 먹어보자!'하고 당당하게 길을 나섰다.


한 5분 정도 헤매다가 우연히 길가에 놓인 빨간 간판을 발견했다. "식사하셨나요?"라고 내게 물었다. '아뇨, 당장 먹고 싶어요...'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2층에 식당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홀리듯이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여는데, "땡-땡-땡"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소리에 깜짝,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에 또 깜짝 놀랐다.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었는데, 근처 성산일출봉 일출을 보시고 오신 모양이었다.


이층으로


이층으로,

잘 찾아왔다. 여기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영업하는 이 동네의 '얼리버드 식당'이다.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엔 테이블이 있었고, 주방 옆 빨간 게시판엔 온통 손님들이 끄적이고 간 색색의 메모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학창 시절 자주 갔던 학교 앞 분식집 느낌이랄까. 참 정겨웠다. 흰 천에 빨간 글씨로 휘갈겨 쓴 메뉴가 위에 걸려 있었고, 전복해물뚝배기라면, 전복콩나물국밥, 전복죽, 고등어덮밥 등이 있었다. '이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뭘까?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뭘까?' 고민하다가 나는 고등어덮밥을 주문했다. 살면서 '고등어 덮밥'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무척 궁금했다.


이층으로의 고등어덮밥


와 - 고등어 덮밥이 나왔다. '에고~ 무셔워~' 고등어의 두 눈이랑 마주쳐 버렸다. 사장님께서 고등어 덮밥 먹는 법을 알려주셨다. 첫째, 잘 구워진 고등어의 뼈를 먼저 바른다. 둘째, 특제 간장 소스를 적당량 뿌리고 당근, 양파, 추, 그리고 쌀밥과 함께 비벼 먹는다. 내가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고등어 뼈를 다 발라내고 비비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완전히 다 발라먹기엔 무리라서 중간에 살 바르는 거 그만두고 그냥 먹은 건 안 비밀이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맛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재료 본연의 맛이 훌륭했고 특제 소스가 잘 어우러졌다. 뜻밖의 식당에서 오늘 계획한 '맛있는 집밥'을 먹자는 목표를 이뤄서 뿌듯하다.




이렇게까지 이른 아침을 먹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숙소에서 진행하는 액티비티를 참여하기 위해서다. 요즘 매일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하는 동안은 '오로지 내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좋았다. 특히, 걸으면서 잠시 생각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느낌을 받는 게 좋았고, 가벼워진 몸이 되는 것을 나날이 발견할 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좋은 걸 제주에서 지내면서도 하고 싶었다.


나는 '일상을 여행으로' : 일상적인 것들을 여행에서도 경험하는 것에 대해 가치를 둔다. 먼저, 여행은 '머물러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나를 옮겨 놓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은 우리에게 삶에 필요한 많은 영감과 충전을 준다. 그다음으로, 여행은 '일상처럼 살아보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의 일들이 새로운 곳을 만나니 단조롭고 평범한 것이 아닌 활력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여행에서 느낀 그 활력과 설렘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나의 에너지가 되었다.


콤마 요가,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플레이스 캠프 액티비티 라운지에서 진행한다. 클래스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모두 참여가 가능하고, 투숙객에게는 10% 할인된 금액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업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바닥은 잔디로 깔려 있는, 탁 트인 공간에서 진행했다. 뒤에 준비된 매트를 각자 놓고 앉아, 선생님의 차분한 음성과 잔잔한 음악에 따라 스트레칭과 호흡을 했다. 내가 참가한 클래스는 초급 요가라서 간단한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로 좌우 균형을 맞추어주는 동작들이 많았는데, 평소에는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깨어나는 기분도 들고 왼쪽과 오른쪽 몸이 견뎌내는 유연성의 차이도 느껴보게 되어 신기했다. 스트레칭을 마치면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벽을 바라보고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한다. 그 시간은 '세상 편하고 걱정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수업은 마무리된다.


한 시간 동안, 온전히 나의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몸에 오는 자극들에 세밀하게 신경을 써서 하나하나 챙겨주어야 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세심하게 챙겨주듯이 요가는 내가 나의 몸의 상태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색다른 매력이 있는 요가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기회였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콤마 요가


다시 한번 도렐 커피,

여행 첫날밤을 따뜻하게 마무리해주었던 핫초코를 마셨던 그곳에 갔다. 도렐 커피는 이곳 제주 본점에서 시작되어 육지에 3호점까지 냈을 만큼 검증된 커피맛을 갖고 있는 브랜드다. 그러니 그 커피맛을 맛봐야 하는 게 당연하기에 다시 한번 찾아갔다. 도렐은 베이커리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매일 아침 구워내는 빵들이 매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도렐 커피


도렐 커피의 아메리카노와 까눌레


아메리카노 한 잔과, 까눌레 하나를 주문했다. 커피는 깊이 있는 맛이, 까눌레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클래식한 맛이 일품이다. 아침 제주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요가의 여운을 간직하고 생각 일지를 써보며 조용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오늘 하늘도 참 맑다. 그 하늘 밑 놓인 꽃길을 걸으니 더 좋다. 어제는 해변을 따라 걸었지만 오늘은 집을 따라 걸어갔다. 넓은 차도 양쪽에 벚꽃 나무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이대로 쭉 (벚)꽃길만 걸어가고 싶다. 제주는 어쩜 해변도 예쁘고 길도 예쁜지, 하나도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것 같다.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는 길은 점점 초록빛으로 바뀌었고, 어느새 나는 숲 속에 서 있게 되었다. 그 숲에 자리해 있는 이곳을 찾아왔다.


빛의 벙커,

빔프로젝터와 스피커를 이용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으로 벙커 안을 가득 채워 넣은 전시회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말 그대로 몰입해서 보게 되는 전시회를 뜻한다.


빛의 벙커


내가 반 고흐 전시회를 처음 갔던 때는 작년이었다. 회사가 시청 근처에 있어서 날 좋은 날이면 점심에 동료들과 산책을 가는데, 산책 코스는 주로 덕수궁 - 서울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을 몇 번 지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가 궁금해졌고,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문화의 날에 맞춰 퇴근하고 회사 친구들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했던 반 고흐 전시회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는 '체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3D 프린터로 만든 반 고흐의 작품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고흐처럼 자화상을 직접 그릴 수 있는 체험 등을 하는 전시였다. 오감을 자극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여서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전시회였다.


그때 만났던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이곳 제주에까지 이르렀다. 빛의 벙커가 마침 숙소 근처에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던 거 같다. 매표를 하고 벙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오색찬란한 화면들이 내 주위에 가득하다. 그리고 내 심장을 쿵-쾅하게 만드는 웅장한 음악이 훅 들려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상하기 편한 곳과 편한 자세를 찾았다. 벽에 기대기도 하고, 마련된 의자에 앉기도 하고, 또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가장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자세를 찾았다. 벙커 가운데 기둥에 등을 대고 바닥에 앉은 채로 작품을 감상했다. 고흐의 인생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그림의 향연들에 내 눈과 귀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빼앗겨 버렸다. 작품을 다 보는 데 30분이 소요되는데, 단지 한 번만 볼 수 없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1시간을 내리 보았다. 하루 종일 앉아서 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황홀한 기분이 드는 전시였다.


크롬 옐로와 코발트블루


흔히 고흐를 떠올리면, 크롬 옐로와 코발트블루 색깔의 그림들을 떠오르기 마련이다. 두 색깔로 그렸던 그림들은 그의 전성기 때의 작품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전시를 통해, 고흐가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시절을 대표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웃음기가 없는, 거친 얼굴을 가진 농부들이 모여 감자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그 당시 고흐는 가난했고 그의 일상은 곧 그림에 투영되었다. 밝은 색깔은 찾아볼 수 없는 어두침침한 그림을 보면서 '그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 상태가 곧 그림이 되었던 고흐의 표현력이 놀라웠다.


감자먹는 사람들


고흐는 감정 표현이 확실 사람이었다. 나는 고흐와 반대 성향의 사람이라서, 때때로 고흐 같은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내가 표현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충분히 나의 마음을 알 거야.'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굳이 나 자신을 보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 마음을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는 '답답한 마음의 환풍구'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 안에 우울한 마음이 밖으로 내보내지지 못한 채로 계속 남아있으면 마음에 병이 드니까, 그 마음을 필히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고흐에게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한 수 배웠고, 앞으로 더욱 내 감정에 확실함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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