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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 Apr 01. 2019

겨울의 한가운데로 떠나는 여행

겨울 여행은 처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을 피해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지만 겨울로 여행을 온 것이 처음이다. 16년에서 17년이 되는 겨울에는 아예 계절이 정반대인 곳에 있었고 17년에서 18년이 되는 겨울에는 겨울이 없는 곳에 있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덥거나 따뜻하거나 온난한 이미지만이 담겨 있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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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한동안 겨울을, 진하고 짙고 깊은 겨울을 보고 싶었다. 온통 하얀 하늘과 땅에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느낌과 들려오는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느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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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카와가 최고의 답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에이의 나무를 보고 JR 홋카이도선으로 아사히카와에 돌아와 제설작업이 한창인 공항을 떠나 회색 도시로 돌아오는 것이 본래 나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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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유럽 여정에 오버트라운이라는 마을을 넣으면서 또 다른 해답을 찾아냈다. 호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운행을 중단한 페리, 바닥이 보이도록 긁어모아 치워도 한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발목 위로 쌓이는 깨끗하고 가벼운 눈발까지 상상하던 이미지들이 펼쳐지고 있다. 호수가여서 수평선과 너울을 볼 수 있다는 건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감동까지 주기도 했다. 이 풍경과 풍경을 담아줄 액자인 커다란 창, 그리고 한 잔의 커피가 있다면 하루 종일도 이 앞에 앉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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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은 여러모로 여름 여행보다 불편하다. 옷가지를 챙기는 것부터 부피가 엄청나게 커지고 추위에 몸이 둔해지며 해도 짧아 활동에 제약이 크다. 할슈타트의 페리처럼, 아예 교통수단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새하얀 세상을 보며 정화되는 기분 그리고 따뜻한 숙소에서 포근한 파자마를 입고 바라보는 안락함이 극대화된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2019.01.03, @Obertraun, Aust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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