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0
아이들과 교실에서 함께 생활한 지 딱 두 달이 지났다. 3년의 휴직 동안 묵힌 짐이지만 교실에서 필수로 필요한 물건들은 꽤나 남겨둔 상태라 생활에 불편함 없이 아이들과 함께 수업할 수 있었다. 시간표는 미처 만들어두지 못했는데 원래 계시던 선생님이 그대로 두고 가셔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 앞에 쌓여가는 물건은 연필과 지우개였다. 아이들은 연필을 자주 떨어뜨렸고 이름표가 붙어져 있지 않아 주인을 찾기 힘들었다. 연필을 주운 아이는 “선생님, 이거 제 것 아니에요.”하며 가져왔고 그때마다 내 사무용품 꽂이에 보관해두었는데 어느샌가 주인을 잃어버린 연필이 가득 찼다. 몇 번을 아이들에게 가져가라 보여줬지만 연필은 자꾸 땅 아래로 떨어져 주인을 잃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마침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분리수거해 둔 플라스틱 컵이 보였다. 컵은 깨끗이 씻겨 있는 상태여서 바로 뚜껑과 컵을 분리해 한 곳에 두었다. 라벨지에 “주인을 찾습니다”를 써 긴 컵 쪽에 붙이고 뚜껑은 뒤집어 “주인님 어디 계세요?”를 붙였다. 사무용품 꽂이에 가득 찬 연필과 지우개를 꺼내 각각의 자리에 옮겨놨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새로운 이름표가 붙은 물건에 관심을 가져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제야 자기 연필이 무엇이며 이 연필은 누구 거다 라는걸 앞다투어 가려냈다. 통을 마련하고 이름표를 붙이고 나니 학용품들은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 알림장에 다음과 같은 당부를 적었다. “자기 학용품에 이름표 붙이기” (물론 다음 날 다시 주인을 잃은 연필이 등장했지만) 이름표 하나만 붙였을 뿐인데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다 선생님께 말하는 일, 선생님이 목이 터져라 주인을 찾는 일, 찾던 학용품이 어디 있는지 수소문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일을 모두 생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기 자리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공간에서는 자기 자리를 정해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의 수고로움을 덜어준다는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서 교실 안에 평화를 가져오는 작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모두 불편을 겪는 일에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는다거나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자리를 정해주지 않는다면 계속 혼돈의 상태가 지속된다. 수업이나 생활지도와 관련 없는 부차적인 문제들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일이 계속 생기면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름표를 붙이고 분실함 통을 만든 이유는 “내 지우개가 없어졌어요. C의 지우개가 제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갈등이 일어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장치 하나로 여러 명이 사용하는 공간에 가져오는 평화를 바로 체험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내가 붙여야 할 이름표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면 그가 주는 파급효과를 경험할지도 모른다.